공들여 키운 외국인 숙련공, 비자 허들에 '눈물의 귀국'

입력 2024-01-05 18:07   수정 2024-01-15 16:15


서울 강북의 한 직업전문학교는 지난 2년간 베트남에서 한국 취업을 희망하는 현지인 100여 명을 선발했다. 직업연수 비자(D4-6)를 활용한 기술 교육 과정을 개설해 산업 현장에 필요한 숙련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이 학교는 강의실을 개조해 기숙사로 바꾸고, 관련 서류를 갖춰 법무부 출입국 관리소에 비자를 신청했지만 모조리 거부당했다. 학교 관계자는 “심사 기준을 물어봐도 내부 규정이라 말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며 “어쩔 수 없이 수강료를 모두 되돌려주고, 리모델링 공사비로 3억원의 손실만 입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숙련 외국인을 확보하기 위한 통로로 마련된 직업 연수생·유학생 제도가 유명무실한 정책으로 전락하고 있다. 불법체류를 의식한 법무부가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 입국용 비자 발급이 거부되거나 취업비자로 전환되지 않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진정성 없다”며 비자 발급 거부
법무부에 따르면 뿌리산업, 일반제조, 조선업, 정보기술(IT), 제과·제빵, 호텔 서비스 등의 기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D4-6 발급 건수는 2017년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약 7년간 583건에 불과했다. 이 비자를 받고 20개월의 교육 과정을 거쳐 국내 취업이 가능한 전문 취업비자(E7)로 전환한 건수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대 및 4년제 대학 입학을 위해 유학비자(D2)로 들어온 외국인도 같은 기간 31만4704명에 달했지만 E7으로 갈아탄 외국인은 1%인 3164명에 그쳤다.

직업 연수 및 유학 비자로 들어온 외국인들은 당장 산업 현장에 활용할 수 있는 숙련 인력으로 꼽힌다. 기술 소양과 한국어 소통 능력을 갖추고 있어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에도 지나치게 엄격한 비자 발급 기준 탓에 산업 현장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있다. 입국 단계부터 허들이 높다. 외국인이 D4-6를 받으려면 18~30세 이하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갖춰야 한다. 또 국내 은행 계좌에 1000만원 이상을 입금해 체재비를 입증해야 한다.

강남의 K직업전문학교 대표는 “출입국에서 요구하는 각종 서류를 제대로 갖춰서 비자를 신청해도 발급이 되는 사례가 드물다”며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탈락시키는 일도 다반사”라고 개탄했다. 또 “외국인이 자비로 연간 800만원 이상의 수강료를 내면서 교육받겠다고 하는데도 정부가 왜 가로막는지 알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 수료 이후 국내 E7 비자로 전환하는 조건은 더 까다롭다. 한국어 능력 4급과 국내 공인 기술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법무부의 사회통합프로그램 4단계를 이수해야 한다.
“정부가 불법체류 조장하는 꼴”
직업전문학교에서 20개월 이상의 교육 과정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남의 한 직업전문학교에서 1년간 용접과 도장 등을 배우던 50여 명의 베트남 외국인 연수생이 대표적인 사례다. D4-6로 들어 온 외국인들은 6개월 단위로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데, 출입국 사무소가 세 번째 연장을 거부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연수 기간은 20개월 이상으로 돼 있는데 정작 D4-6의 체류 기간은 ‘원칙적으로 최대 1년’인 모순된 규정 탓이다. 결국 진로가 불투명해진 일부 연수생은 교육장을 이탈해 불법체류를 택했다.

유학생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들도 E7 전환이 쉽지 않아 상당수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불법체류자로 돌아서고 있다. 이기중 중소기업중앙회 외국인력지원실장은 “산업 현장에서는 단순 업무 중심의 비전문 취업비자(E9)로 들어오는 외국인보다 기술과 한국어가 모두 가능한 외국인을 필요로 하는데, 이들을 활용하지 못해 너무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광석 인하대 이민다문화정책학과 교수는 “현행 비자 체계는 숙련된 고급 인력을 한국 사회에 활용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내보내려는 정책에 가깝다”며 “불법체류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도 취업비자로의 출구 전략이 막혀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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