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개발 사업은 PF를 조직해 사업을 진행하는 시행사와 건물을 짓는 시공사(건설사)로 구분된다. 태영건설은 시공사다. 2010년대 초 저축은행들이 무리한 PF 대출로 대거 도산한 이후 금융권은 PF 비중을 줄여 왔다. 그러자 PF는 단기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태영건설 등 상당수 건설사가 이 ABCP에 보증을 섰다. 그 대가로 공사를 수주하는 사업 모델을 개발했다. 시공사인 태영건설이 대규모 보증채무를 지게 된 이유다. 부동산 호황기에는 이런 모델로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물가 상승과 고금리로 시장이 고꾸라지자 PF 보증은 부실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총수와 경영진의 과욕은 핵심 자산을 토해내야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워크아웃이 시작되면 채권단은 채권 행사를 미루고 기업에 신규 자금을 더 투입한다. 채권단은 기업에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 태영그룹이 알짜 자산인 에코비트 등 자회사를 팔거나 담보로 맡기고,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와 계열사 SBS 지분까지 활용하겠다고 공언한 배경이다.
태영건설이 법정관리를 선택했다면 어떨까. 작년 말 기준 자산이 2조7450억원인 태영건설은 보증채무만 9조5000억원(채권단 추산)에 달한다. 법원이 청산을 결정하면 대부분의 채권자가 상당한 손실을 보게 된다. 협력업체와 분양계약자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태영그룹과 총수 일가는 태영건설 하나만 잃고 다른 것을 지킬 수 있게 된다.
태영이 사재를 내놓는 워크아웃을 선택한 데는 방송사 SBS를 지키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공익성과 신뢰성을 핵심으로 하는 공중파 방송의 총수 일가가 피해를 외부에 전가하는 선택을 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태영의 결정이 다수의 피해를 줄인다는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선 이번 사례를 계기로 부실 계열사를 둔 그룹이 워크아웃을 회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한 사모펀드(PEF) 관계자는 “워크아웃의 이행 조건이 법정관리보다 더 가혹하다고 판단하면 기업 오너가 워크아웃을 선택할 이유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부실기업이 법정관리 대신 워크아웃을 택할 수 있도록 채권단과 금융당국이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강현우/박종관/이인혁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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