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동판결, 법적 안정성도 중시해야

입력 2024-01-14 18:20   수정 2024-01-15 00:23

국내 경제활동 인구의 절대다수는 사업장에 출근해서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 삶을 영위하는 근로자이거나, 그들을 고용해 업을 유지하는 사용자다. 이것이 노동 분야 주요 판결이 그 어떤 분야보다 한국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이유이기도 하다.

올 한 해도 많은 노동 분야 판결이 대법원에서 최종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노동법 전문가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3개의 사건을 뽑자면 △통상임금의 지급일·재직 조건 사건 △하청 노조에 대한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 사건 △기업이 지급하는 경영성과급의 임금성 사건을 들 수 있다. 하나같이 대법원 선고가 나오면 각종 매체의 단골 주제가 될 대형 사안이다.

먼저 통상임금 사건을 살펴보자. 통상임금은 시간 외 근로 수당이나 연차휴가 수당의 지급 단위가 된다. 하지만 사용자가 지급하는 금품 중에서도 일정한 조건을 갖춘 것만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 대법원은 2013년 지급일에 실제로 재직하는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금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후 많은 사업장에서 이 판결에 비춰 임금 체계를 개편하거나 통상임금을 산정해 왔다. 그런데 현재 대법원에선 이렇게 지급일 재직 조건이 있는 임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가 다시 쟁점화하고 있다. 만약 2013년 판결을 뒤집는 결과가 선고되면 10년 넘게 대법원 판결에 따라 임금 체계를 갖춰온 기업들은 예상치 못한 경제적 부담을 질 수 있다.

두 번째로 원청 회사의 하청 회사 노동조합에 대한 단체교섭 의무 인정 여부는 단체교섭 의무를 지는 사용자의 범위에 관한 문제다. 한국에서는 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하면 사용자는 이에 응할 법적 의무가 있다. 그런데 사용자와 도급 계약을 맺은 하청 회사의 노조가 사용자인 하청 회사가 아니라 원청 회사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한다면 원청 회사는 이에 응해야 할까.

형식적으로는 직접 근로계약 관계가 없으니 원청이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겠지만,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원청 회사도 하청 회사 노조와 직접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는 하급심 판결이 선고됐고 현재 대법원에서 다퉈지고 있다. 이 사건은 사실상 전 사업장에 걸쳐서 노사관계 당사자에 대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경영성과급의 임금성 문제는 쉽게 말해 퇴직급여를 계산할 때 근로자의 개별 실적이 아니라 회사의 집단적 성과를 근거로 지급하는 성과급을 포함해야 하는지의 문제다. 기업은 기본급여 외에도 실적이 좋은 경우 일정 기준에 따라 근로자에게 PS(초과이익분배금) 또는 집단적 경영성과급이라고 불리는 성과급을 지급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이런 경영성과급은 근로자 개인의 근로 제공에 대한 직접적 대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임금으로 분류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일부 하급심에서는 경영성과급도 근로기준법상 임금이라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대법원에서 이를 다투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만약 집단적 경영성과급이 임금으로 인정되면 근로자들이 퇴사할 때 지급받는 퇴직급여가 증액되고, 이미 퇴사한 경우에도 퇴직급여를 다시 산정해 달라는 소급 청구가 빗발칠 것이다.

한국 사회는 2013년 통상임금 판결과 2022년 임금피크제 판결처럼 한 건의 노동 분야 판결이 사회 전체를 흔드는 나비효과를 경험한 바 있다. 물론 사회의 흐름과 인식 변화에 맞춰 과거의 판결도 역동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법적 안정성이라는 점을 잊지 않은 판결이 선고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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