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의 공간생각] 닭을 살찌워 잡아먹기보다 알을 낳게 하라

입력 2024-01-17 09:53  

이 기사는 01월 17일 09:5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1970~80년대 대한민국 서민이 자산을 증식하는 방법은 은행 예금밖에 없었다. 우리네 부모님이 저축을 열심히 해야 부자 된다고 말씀하신 이유다. 용돈 한푼 두푼으로 모인 돼지 저금통을 들고 은행을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투자라는 개념조차 생소했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 받은 급여가 수입의 전부였던 사람들에게 IMF 외환위기는 커다란 변곡점이 됐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흐려졌고, 주택 구입과 은퇴 후의 안정적인 삶 등을 위해 자산 증식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IMF 기간에 금융시장 개방은 가속화됐고, 전국민적 단합으로 시련을 극복한 밀레니엄 시기부터 주식, 채권 등에 투자하는 다양한 금융 상품들이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펀드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최근 국내 펀드시장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돌파했다고 알려졌다. 펀드가 서민의 자산 증식 수단이 된 것뿐만 아니라 일반에 금융투자에 관한 개념을 전파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업 종사자로서 이 같은 성장에 큰 자부심을 느끼지만, 과연 펀드가 투자자에게 긍정적인 역할만 했는지도 돌아보게 된다.

최근 몇몇 사모펀드가 운용 가이드라인 위반, 자금 유용 등의 행위를 반복하고 환매 대응을 위한 돌려막기 등으로 투자자에게 큰 손실을 입힌 것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다.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위해 부적합한 자산에 투자하고 내부 통제시스템, 위험관리 등에 소홀했던 특정 운용사의 잘못이긴 하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가 운용업에 대한 투자자의 불신을 증폭시킨 사실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자산운용사가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이기에 사업 성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단기적 수익을 추구하는 테마형 펀드보다는 투자자에게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금융상품을 제공해야 무너진 펀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산가격의 변동에 따른 자본수익이 아니다. 이보다 자산을 보유함으로써 발생하는 이자, 배당, 임대료 등의 인컴(Income) 수익이 핵심이다. 과거 예·적금으로 자산을 불리던 시기의 기본적인 투자철학은 시간에 투자하는 것이었고, 이로 인한 재투자 효과, 복리 효과를 누리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다양한 금융상품이 나왔지만 투자의 기본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급성장하는 자산에 투자하고 되팔아 단기간 수익을 시현하는 것도 좋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자산이 지속적으로 인컴을 제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시간에도 함께 투자해야 한다. 닭을 살찌워 잡아먹는 것이 아닌, 닭이 매일 낳는 달걀을 취하는 형식이 장기적인 투자 관점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한다. 그리고 이에 가장 적합한 투자자산은 단연코 채권이다.

일반 투자자 관점에서 채권이라는 자산은 원금 손실이 발생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에 시중에 출시된 채권펀드의 주된 투자 대상은 국공채와 우량 기업채권 위주다. 이에 따라 수익률이 여타 자산에 비해 현저히 낮으며 투자 가능한 펀드 라인업 역시 다양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MMF(머니마켓펀드), KOFR(무위험지표금리) ETF와 같이 은행 예금금리 수준의 수익을 제공하는 단기 자금 운용 펀드에 자금이 쏠리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이러한 단기 금융상품에 대한 수요는 정부채, 금융채 등 유동성이 높은 초우량 채권에 대한 투자에 집중되고 여타 채권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킨다. 우리나라에서 회사채, 하이일드 채권 펀드와 같이 중장기적으로 수익을 제공하는 인컴 펀드가 성장하지 못하는 배경이다. 그러나 해외는 다르다. 하이일드 채권, 구조화 채권, 사모채권 등을 활용한 다양한 종류의 채권펀드가 있어 투자자가 장기적인 인컴 수익을 누릴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

채권펀드는 기존의 전통적인 공모펀드 외에도 ETF(상장지수펀드), TDF(생애주기형펀드) 등 다양한 투자기구 형태로 설계되어 있어 일반 투자자도 언제든 투자할 수 있다. 다만, 낮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국공채 일색의 채권펀드가 대부분이고, 일반인이 중장기적 관점의 인컴 투자를 하기에 적합한 상품이 드물다.

하지만 향후 다양한 채권자산을 편입할 수 있는 펀드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도드-프랭크 법안(Dodd-Frank Act), 바젤 III 도입 등으로 은행의 자기자본 확충이 확대되고 위험자산에 대한 가중치가 높아지면서 미국, 유럽의 은행들은 중견, 중소기업 대출을 급격하게 축소하고 있고 민간 자본을 활용한 자산운용사들이 빠르게 그 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국내 운용사들도 선진 금융시장에서 보편화된 직접대출(Direct Lending), 사모채권(Private Debt), 기업성장기구(Business Development Company) 등을 국내시장에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활용해 투자자에게 다양한 투자 선택지를, 산업계에는 원활한 자금조달 창구의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일반 투자자는 단기적인 고수익을 위해 주식, 선물/옵션, 가상화폐 등에 투자하고 중장기 투자 관점에서는 부동산에 관심을 가져왔다. 주식, 선물/옵션, 가상화폐 등의 거래량이 전 세계 최고 수준이고 국내 부동산 펀드 순자산 총액이 2004년 말 8600억 원에서 2024년 1월 현재 169조 원 규모로 200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과거 15년간 저금리 시대의 영향으로 이러한 투자가 각광을 받아왔지만 지금과 같은 고금리 시대의 투자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 우리의 투자 ‘공간’은 좀 더 다양한 자산을 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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