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상속세 부담 때문에…가업 승계 대신 사모펀드 품으로

입력 2024-01-19 18:40   수정 2024-01-20 02:52

한 대형 회계법인에서 인수합병(M&A) 업무를 담당하는 A파트너는 1년 중 절반 이상을 지방 출장길에 나선다. 지방 중소·중견기업 오너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평소 좋은 관계를 맺어둬야 원매자가 나타났을 때 오너들에게 회사 매각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A파트너는 “과거에는 회사 매각 이야기를 꺼내면 경계심부터 드러내는 게 일반적이었다”며 “요즘은 고령의 오너들이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등을 거론하고 희망 가격을 먼저 제시하며 매각에 적극적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가업 승계 대신 경영권 매각을 선택하는 기업 오너가 늘고 있다. 제조업 기피 현상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과도하게 높은 상속세 부담도 이런 선택을 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라는 게 M&A업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2세, 3세로 승계하는 과정에서 최대 60%의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지분을 팔다 보면 오너가 지분율은 계속 쪼그라든다. 그럴 바엔 일찌감치 회사를 팔아 확보한 현금을 증여받아 빌딩에 투자하거나 투자회사를 새로 차리겠다는 2세, 3세 요청에 승계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은 상속세 때문에 가업 승계를 포기한 알짜 기업을 주워 담고 있다. 부산 소재 신발 원단 제조업체인 B사가 대표적이다. 나이키 등 글로벌 업체의 협력사인 이 회사는 창업주가 2000년대 초반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겼지만 3세 승계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2021년 국내 최대 PEF 중 한 곳에 경영권을 매각했기 때문이다. 이 매각 딜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B사는 2세 승계 때도 집안의 돈을 긁어모아 겨우 세금을 냈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오너 일가가 과도한 상속세 때문에 PEF에 경영권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오너들이 승계를 포기하고 PEF에 넘긴 후 회사가 한층 성장한 사례도 있지만 경쟁력을 잃고 표류한 경우 또한 적지 않다. 대주주가 장기간 축적한 영업망, 생산 노하우 등 무형자산이 PEF 체제에서 훼손되면서다. PEF가 단기간에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무리한 경영 계획을 세운 탓에 회사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2017년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매각된 락앤락은 6년 만에 기업가치가 4분의 1토막 났다. 2016년 이스트브릿지와 골드만삭스 컨소시엄에 매각된 해피콜은 7년 만에 매출이 반으로 줄었다.

차준호/박종관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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