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갈 동지로 여겼던 해외 파트너사들이 코로나19가 터지자 돌변했다. 어떤 고객은 대금을 제때 줄 수 없다고 통보했고, 원자재를 공급하던 업체는 자재값을 서둘러 주지 않으면 납품을 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정인수 동인기연 대표는 2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피아 구분이 확실해졌다”며 “가격을 깎자고 속 썩이던 고객사를 정리한 덕분에 영업이익률이 훨씬 개선됐다”고 말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 중견기업 동인기연은 아크테릭스, 그레고리, 블랙다이아몬드 등 전 세계 내로라하는 아웃도어 브랜드 배낭을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만든다. 불편한 업체와 거래를 끊었지만, 여전히 글로벌 고객사는 40여 개에 달한다. 인체공학에 기반해 가볍고 튼튼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차별화된 기술력 때문이다.이 회사가 생산하는 전문가용 등산배낭은 세계 시장 점유율이 45%에 달한다. 그 덕에 1000억원대였던 매출은 2022년 2505억원, 영업이익은 427억원으로 올라섰다. 지난해에는 경기 침체 여파로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가면서 매출 약 2200억원을 거둘 것으로 추정된다. 정 대표는 “코로나19 유행 때 막혔던 여파로 재고가 쌓여 있었는데 이제 다 소진했다”며 “지난해 10월부터 공장을 완전가동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졸업 후 현대중공업에 다니던 정 대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상경하라는 아버지 호출에 짐을 싸서 서울로 갔다. 이후 1992년 동인기연을 창업했다. 배낭에 들어가는 알루미늄 부품 생산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발품 팔아가며 해외 영업하던 중 ‘봉제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미국 켈티사의 요청에 영역을 넓혔다.
정 대표는 사업을 확장하면서 필리핀에 터를 잡았다. 현재 필리핀 공장 근로자만 1만 명에 이른다. 필리핀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배낭 물량은 연간 550만 개, 최대 30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정 대표는 2022년부터 새 도전에 나섰다. 자체 브랜드를 시장에 선보인 것. 하이엔드 아웃도어 브랜드 ‘인수스(Insooth)’, 캐주얼 백팩을 만드는 ‘디나이언트(Dinaient)’ 등이 대표적이다. 등산용품 외에도 유아·반려동물용품 시장까지 개척했다. 특히 가벼우면서 고강도인 유아용 카시트는 지난해 말 블랙프라이데이 때 미국에서 5600개 ‘완판’ 기록을 세웠다. 정 대표는 “코로나19 때 일부 파트너의 변심을 겪어보니 내 브랜드가 있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인터뷰 내내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그는 “단 한 번도 품질과 타협해본 적 없다”며 “상품 일부가 문제가 있을 때 깎아서 공급할 수도 있겠지만 전체 다 회수해 새로 만들어서 보낸다”고 말했다. 또 “고강도 알루미늄을 생산하기 위해 부러뜨린 텐트폴만 1만 개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등의 산업만 우대하는 분위기에 대해선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 대표는 “국내에선 봉제 회사라고 저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에르메스와 루이비통도 봉제회사인 만큼 우리 사업도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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