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칼럼] 저출산 문제 닮아가는 '지역 소멸' 걱정

입력 2024-01-25 17:49   수정 2024-01-26 00:47

모두가 지역 격차를 걱정하지만 어떻게 보면 영광의 상처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급히 달려온 산업화의 부산물이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20세기 중후반 이후 글로벌 메가트렌드다. 산업화는 세계 모든 국가의 지상목표였다. 이 바퀴의 속도가 곧 국가 경쟁력이었다. 그 옆 작은 바퀴가 대도시 기반의 전문화·분업화·집중화다. 선진적 대도시에서 산업과 문화가 발달해왔다. 한국은 이 흐름을 잘 탔다. 성과도 냈다. 그렇게 경쟁에서 살아남으면서 지역 격차라는 부작용을 배태했다. 소농이 다수였던 가난한 농경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산업과 경제의 고도화를 못 이뤘다면 없었을 문제다.

제대로 된 원인 진단은 어디서든 중요하다. 그런데도 요인과 성과는 간과한 채 자칭 전문가들까지 파생적 결과만 놓고 한탄하고 냉소하고 걱정을 부추긴다. 최근의 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또 한 번 그런 한계를 절감했다. 걱정만 하고 문제점만 늘어놓는다고 풀릴 일이 아니다. 서울·수도권이 광역 도쿄, 간사이 오사카, 베이징·상하이 경제권과 치열한 지역 경쟁을 벌이는 시대라는 것까지 함께 봐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균형발전 과제가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닮아간다. 백가쟁명으로 우려가 넘치고 중구난방 당위론적 대안은 많지만, 뚜렷한 해법도 사회적 합의점도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연금개혁 문제를 포함한 고령화 우려도 분명 걱정거리지만 이 또한 영광의 상처다. 의료·위생·영양·노동·일반복지에서 단기간에 과도한 성과를 내면서 한국인 수명이 급격히 늘었다. 평균수명이 60세라면 없었을 문제다. 두 난제 모두 결과에 매몰돼 있는 것도 닮았다.

이전의 노력을 반성적으로 돌아보며 몇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무엇보다 거대담론 식의 큰 그림을 짜기보다 실제 개인과 투자가(기업)를 움직일 수 있는 체감형 디테일 행정에 주력할 때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물거품 된 문재인 정부의 ‘부울경(부산·울산·경남)특별연합’ 같은 구름 잡는 구상은 내지 않는 게 차라리 낫다. 획기적 조치라고 했던 노무현 정부의 공기업 이전도 껍데기만 남았다. 혁신도시는 밤이면 불이 꺼지고 주말엔 바람만 지나친다. 기업 이주를 전제로 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혁신센터도 남은 게 없다. 윤석열 정부의 ‘지방시대 프로젝트’는 달라야 한다. 교육·문화 등을 내건 ‘4대 특구’의 조기 성과 내기가 일단은 관건이다.

실감 행정의 좋은 사례가 최근에 보였다. 인구 감소 지역에서 추가로 집을 사도 1주택자 세제 우대를 계속해주는 것이다. 1·10 부동산대책에 있다. 2주택에 대한 징벌적 중과세에서 이런 예외만 둬도 베이비부머들은 연어처럼 귀향·귀촌을 시도할 것이다. 국토 면적의 40%나 되는 89개 공인 인구 위기 지역에서 5060세대가 ‘5도2촌’(닷새 서울, 이틀 지방)만 해도 절반은 성공이다. 기업의 지방 이주를 유도할 때도 법인세보다 임직원의 개인 소득세를 깎아주는 게 체감형이다. 이런 실감 행정이 실제로 인구를 움직일 것이다.

과도한 울분, 비하 같은 냉소와 한탄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지방의 열패감만 키울 뿐이다. 도시화는 어차피 글로벌 대세다. 수도와 여타 지역의 격차 문제로만 보면 프랑스에서도 파리와 그 밖의 격차가 심각한 이슈다. 사회주의 중국에서도 상하이 같은 곳의 우월의식과 배타성은 유별나고, 격차도 크다. 북한에서 평양의 특권적 지위는 말할 것도 없다. 서울과 교통 연계에 매진할 때는 문화·소비·의료 등 전방위로 서울에 빨려드는 부작용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굳이 서울에서 치료받겠다며 몰려가면서 지역 의료 다 죽는다는 식의 한탄도 적절치 않다. 시대 변화에 따른 안타까운 현상도 있다. 가령 버스터미널이 다 소멸한다고 우려하지만, 서울로 보낸 아들딸은 물론 지역 주민들도 쉽게 자가용을 끄는 데 따른 결과다.

지역 스스로 변화가 중요하지만 큰 열쇠는 중앙, 정부와 국회에 있다. 그런데도 지역 대표가 다 모인 국회에서도 지역 격차는 주요 관심사가 못 된다. 21대 국회는 더 하다. 어느덧 균형발전 문제도 저출산·고령화나 북한 핵처럼 돼 간다. 모두 잘 안다고 여길 정도로 일상이 됐다. 전문가도 늘었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안 보인다. 그렇게 고질병이 돼 양치기 소년의 경고처럼 될까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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