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韓 의료수준, 꺾일 일만 남았다" 의사들의 한탄

입력 2024-01-25 17:45   수정 2024-01-26 00:38

“지금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누리는 시대일 겁니다. ‘세계 최고’라고 평가받는 한국 의료는 이제 꺾일 일만 남았습니다.”

서울 대형 대학병원의 한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최근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조차 ‘사람을 살리는’ 진료분야 교수 인력을 구하지 못해 의료 서비스 수준이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는 취지다.

대학병원은 중증 환자 치료를 담당할 마지막 보루다. 대학병원들이 정해진 인력을 채우지 못하면 휴일·야간 당직이나 응급수술 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직 설 의사가 없어 서울지역 응급실들이 야간 소아 진료를 포기한다는 소식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다른 서울 대형 대학병원의 심장내과 교수는 “연말이면 돈 잘 버는 개원가로 이탈하는 펠로(임상 강사)를 잡기 위해 설득에 나서지만 역부족”이라며 “서울지역 대학병원조차 응급시술 파트는 정원을 채우지 못한 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되면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를 거쳐 전문의가 된다. 그동안 정부의 의사 수급 정책은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과 전공의 지원율을 높이는 데 집중됐다. 이들 과로 의사가 유입돼 전문의가 많아지는 게 기본이라고 판단해서다.

의사들은 대학병원에서 배출된 전문의가 중증 환자를 보는 교수로 성장하는 연결고리도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형외과 등 인기과는 물론 외과 등 비인기과에서도 전문의를 딴 뒤 필수의료 분야에 남는 세부 전공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정형외과 의사들이 돈 잘 버는 관절·척추병원으로 향하면서 대학병원에서 외상환자를 수술하는 교수를 찾는 게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전문의는 많지만 고난도 수술을 할 의사는 되레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대학병원 수술 환자를 돌볼 마취과 교수들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높은 급여를 좇아 지역 병·의원으로 떠나면서 일부 대학병원은 수술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50대 교수라도 버티는 지금이 낫다’는 게 의사들의 일관된 평가다. 상당수가 후임자를 찾지 못해 이들이 은퇴하면 명맥이 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도 중요하지만 의사들이 환자를 살리는 분야에 끝까지 남도록 육성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수십 년쯤 지나면 간단한 맹장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조차 사라질 겁니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숨지는 환자가 늘겠죠. 지금이 한국 역사상 가장 평균수명이 높은 때가 될 겁니다.”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며 또 다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들의 한탄에 정부가 답을 내놓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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