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고 심장 전문의…전 세계 '스텐트 시술' 교과서 바꿨다

입력 2024-01-26 17:58   수정 2024-01-27 00:58


‘심장 혈관을 넓히는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면 1~2년마다 혈관이 좁아지지 않았는지 추적 관찰해야 한다.’ 수년 전까지 세계 의학계에서 통용되던 말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틀린 얘기가 됐다. 박덕우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가 2022년 세계 3대 의학술지인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발표한 논문이 시작이었다.
세계 의사들의 교과서 새로 쓴 의사
당시 그는 국내 환자 1700여 명을 분석해 증상이 없다면 검사하지 않아도 생존율에 영향이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지난해 미국심장학회는 이를 토대로 세계 의사들의 표준 진료 지침인 가이드라인까지 바꿨다. 논문이 발표된 지 1년 만에 의료 현장에 반영될 정도였다.

지난해 유럽심장학회 학술대회에서 박 교수를 만난 미국 하버드대 의대 심장내과 교수는 “4년 전 스텐트 시술한 아버지에게 추적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과학은 의심에 대한 답을 찾는 학문이다. 의학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 전부터 통용되던 치료법이라고 해도 한 편의 논문을 통해 완전히 틀린 게 될 수 있다. 박 교수는 이를 입증하고 있는 의사다. 진료 성과도 독보적이다. 협심증과 심근경색증 환자의 막힌 혈관을 뚫는 스텐트 시술과 대동맥 판막 협착증 환자를 위한 경피적 대동맥 판막 치환술(TAVI) 분야에선 세계 전문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이 TAVI 시술을 1845건(지난 17일 기준) 시행하는 데도 큰 공을 세웠다. TAVI는 노화된 대동맥 판막이 좁아져 혈류에 문제가 생기는 대동맥 판막 협착증을 수술 없이 고치는 치료법이다. 그의 팀은 매년 370건 넘게 시술하며 환자를 살리고 있다.

의사들에겐 ‘꿈의 학술지’로 불리는 NEJM에 그가 참여한 논문만 여섯 편이다. 2012년엔 미국심장학회에서 ‘세계 최고 젊은 과학자상’을 받았다. 미국 최고 심장 전문가인 마크 새바틴 하버드대 의대 교수처럼 당대 최고 의사가 받아온 상이다. 아시아 의사가 이 상을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의과대학에 다닐 때 배운 내용 중 절반 정도는 지금은 아예 맞지 않는 내용이에요. 의학은 계속 발전하는 학문이죠. 신약 개발을 위한 중개 연구가 아니라 임상 연구는 어떻게 환자를 더 좋은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박 교수의 말이다.
98세 환자 심장 시술 후 104세까지 거뜬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른 심장내과 의사지만 그의 하루는 새벽 6시30분에 시작한다. 오전에는 TAVI 시술 등을 하고 오후엔 외래 진료를 한다. 틈틈이 논문을 쓰고 주말이면 일본,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의 의사들에게 진료 노하우를 전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그는 “20년 넘게 같은 삶을 살다 보니 운동선수들이 지키는 루틴처럼 습관이 굳어졌다”고 했다.

규칙적 일과는 그의 멘토인 박승정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석좌교수와 생활하면서 자리 잡은 것이다. 국내에 스텐트 시술을 들여온 박승정 교수는 올해 70세를 맞았지만 1년 365일 새벽 6시10분이면 병원 문을 연다. 박덕우 교수는 그와 함께 2008년 심장에서 가장 중요한 혈관인 좌주간부 관상동맥에 문제가 생긴 협심증 환자에게 스텐트 시술을 해도 수술만큼 효과적이라는 것을 세계 처음 입증했다. 박 교수는 “논문 발표 전까진 한국의 진료 수준이 미국, 유럽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한국 의사들이 제일 먼저 좌주간부 스텐트 효과를 입증하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리딩 그룹이 됐다”고 했다.

국내 의사들의 실력이 높아지면서 고령 환자 심장 시술은 일상이 됐다. 과거엔 80세만 돼도 ‘굳이 심장을 고칠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치료 부담이 적은 TAVI 등이 도입되면서 90대에도 심장 시술을 받고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박 교수는 “숨이 너무 차서 밤에 잠을 못 자는 증상으로 6년 전 수술받은 98세 환자가 올해 외래 진료를 보러 와 미국 가는 비행기를 타도 되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엔 스텐트를 넣으면 얼마 쓰지 못한다는 얘기도 많았지만 스마트폰이 진화하듯 스텐트도 진화해 최근엔 시술 환자의 95% 정도는 같은 부위 재시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정설”이라며 “혈전약 등만 평생 잘 챙겨 먹으면 지리산을 종주하고 히말라야를 등반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콜레스테롤 수치 높다면 약 먹어야
박 교수를 찾는 환자 상당수는 급성 심장 질환자다. 환자 스스로 증상을 파악해 제때 병원을 찾는 게 중요하다. 협심증은 가슴을 쥐어짜는 것 같은 통증이 대표 증상이다. 가슴에 고춧가루를 뿌린 것 같다는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도 많다. 양치질하는 정도의 가벼운 활동으로도 심장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진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심부전은 호흡곤란 증상을 많이 호소한다. 숨이 차서 잠을 못 잘 정도라며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다. 다만 이런 통증이나 호흡곤란 없이 갑자기 심장만 두근거린다면 심각한 심장질환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남성은 55세, 여성은 60세부터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 늘어난다. 박 교수는 “오래된 수도 배관에 녹이 스는 것처럼 이론적으론 20대 초반부터 혈관 속에 찌꺼기가 끼기 시작한다”며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좁아지다가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담배를 지나치게 많이 피우거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데도 관리를 안 해 젊은 나이에 심장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젊은 남성이 심근경색으로 실려왔다’. 이럴 때 1번 요인은 담배예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데 약을 안 먹는 게 그다음으로 많죠. 총콜레스테롤이 270㎎/dl인 환자가 약을 안 먹고 체중만 줄이겠다고 하는 일도 많아요. 콜레스테롤의 90%는 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음식 조절로 좌우되는 것은 10%밖에 되지 않습니다. 체중 감량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치는 10~20㎎/dl 정도뿐이죠. 정상치인 200㎎/dl에 도달하는 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박 교수가 약 복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콜레스테롤이 만들어지는 원인을 끊어주는 약이 스타틴 계열이에요. 저도 40대부터 복용하기 시작해 10년 넘게 먹었습니다. 현대 의학은 비행기를 넘어 로켓을 날리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약을 먹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이지현 기자

■ 약력

2022년 7월~. 대한심혈관중재학회 학술이사
2021년 1월~. ‘JACC ASIA’저널 초대 부편집장
2014년 3월. 제7회 아산의학상 젊은의학자 부문
2012년 3월. 美심장학회 올해 최고 젊은과학자상
2010년 11월. 분쉬의학상 젊은의학자상 수상
1998년 2월. 경희대 의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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