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 목적으로 싱가포르로 이주하거나 싱가포르에 투자법인을 설립하는 한국인 부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자산을 효율적으로 불리고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데 다양한 이점이 있어서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해 상속·증여 시점을 고민하는 자산가가 늘어나면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거액 자산가들에게 싱가포르는 ‘아시아 최고의 세금 천국’이라고 불린다. 싱가포르는 2008년 상속세와 증여세를 없앴다. 이전엔 상속재산 1200만달러까지는 5%, 그 이상은 10%의 상속·증여세를 부과했다. 최고 60%에 달하는 상속·증여세율로 고민하던 한국 기업인들이 이런 세금 혜택을 들으면 솔깃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중견기업을 경영하던 A씨는 고민 끝에 사모펀드(PEF) 운용사에 회사를 매각하고 가족들과 함께 싱가포르로 와서 정착했다. A씨는 싱가포르에 투자법인을 설립한 뒤 글로벌 운용사를 통해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B씨는 은퇴한 뒤 전 재산을 정리해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그중 500억원을 투자해 4층 규모 빌딩을 매입했다. 매년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임대료 수입이 30억원 안팎이다. 싱가포르에선 부동산에 대해 부동산 매매 과정에 취득세, 양도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대신 인지세(BSD)가 있는데, 과세표준에 대해 최대 5%(거주용 6%)를 물린다. 상업용 부동산은 다주택 소유나 단기 투자를 막기 위한 세금도 부과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선 ‘영리치’(젊은 부자)들이 싱가포르행(行)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젊은 나이에 코인, 주식 투자 등을 통해 자수성가하고 절세와 자산 관리에 적극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장·노년층에 비해 투자 이민 결단도 빠르다.
해외여행이나 유학 경험이 많아 “굳이 규제가 많은 한국에서 사업할 필요가 있냐”며 해외 이주에도 부담을 갖지 않는다. 2012년 당시 30대 초반이던 C씨는 싱가포르 현지에 법인을 설립하고 암호화폐에 투자했다. C씨의 자산은 2012년 약 25억원에서 지난해 말 1조3000억원으로 11년간 500배 넘게 불어났다.
싱가포르=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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