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도 부동산 열풍…'종로 기와집' 얼마에 팔렸나 보니

입력 2024-02-01 16:12   수정 2024-02-01 16:30

조선시대에도 부동산은 백성들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부동산을 매매할 때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했고, 한성부에서는 부동산 거래를 관리하기 위해 거래 당사자와 증인에게 공증문서를 발급했다. 당시 주택 매매 기록을 모은 자료집이 최근 공개됐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최병구)은 최근 서울의 집·땅값을 기록한 ‘조선후기 한성부 토지·가옥 매매문서1’을 발간했다고 1일 밝혔다. 자료집에는 조선후기 서울의 중부와 동부 지역에서 거래된 토지와 가옥 매매문서 304점이 수록됐다. 각 고문서의 도판과 원문을 싣고, 전문가 해설을 추가하여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소장자료집을 통해 조선시대 때의 토지 거래 내역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동대문 밖 농지를 거래한 문서는 36점의 문서가 연결돼 길이만 12m에 이른다. 1609년부터 1765년까지 150년 동안 토지를 거래한 이력과 토지 소유자 내용 등이 담겼다.

효령대군 후손이 소유했던 종로의 한 기와집은 180년 동안 거래된 이력이 남아있다. 1724년의 집값은 은화 300냥(동전 약 600냥 수준)이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4000만 원 이상이다. 부동산 가격은 19세기 중반까지 서서히 상승하더니, 19세기 말에 이르러 동전 2만8000냥으로 40배 넘게 뛰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성부 집값 상승과 조선 말기의 인플레이션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노비가 자신의 집을 매도하는 사례도 있다. 신분을 사비(私婢, 개인 소유의 여종)로 기록한 효생이라는 인물은 지금의 종로 공평동 부근에 기와 5칸, 초가 3칸의 집을 소유했다가 은화 150냥에 매도하였다. 노비가 경제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상당한 재산을 소유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료집을 살펴보면 노비 외에도 여성, 군인, 중인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부동산을 거래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올해 중으로 한성부 서부·남부·북부 소재 토지·가옥 매매문서 200점가량을 수록한 소장유물자료집 2편을 이어서 발간할 예정이다. 소장유물자료집은 서울역사박물관 내 기념품점과 서울특별시청 지하에 있는 서울책방에서 구매할 수 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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