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런 일이"…삼성 반도체 인재들, 이탈에 '비상'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입력 2024-02-04 08:20   수정 2024-02-05 14:35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주력 제품인 HBM3(4세대 고대역폭메모리), DDR5(더블데이트레이트5) 등 최첨단 D램 경쟁에서 최근 SK하이닉스에 밀린 것으로 평가된다. 30년 연속 메모리반도체 점유율 세계 1위를 차지했던 삼성전자의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기로에 선 삼성전자 반도체' 시리즈 2회에선 원인을 분석한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경쟁력 약화가 최근 1~2년 사이에 갑자기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고 분석한다. 적어도 5~10년 전부터 생긴 균열이 누적돼 지금의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 사업을 흔들고 있다.
"메모리 파운드리 두 마리 토끼 잡으려고 했지만..."
첫 번째 짚어볼 대목은 '메모리와 파운드리 사업에 분산되는 자원'이다. 우선 투자 규모다. 삼성전자가 2023년 반도체에 쓴 시설투자(CAPEX)액은 총 48조4000억원이다. 2022년 반도체에서 거둔 영업이익 23조8200억원의 2배 넘는 금액을 이듬해 CAPEX에 쏟아부었다. 최신형 핵 추진 항공모함 3척을 건조할 수 있는 비용과 맞먹는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메모리(D램+낸드플래시)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시스템LSI사업부)를 다 하는 삼성전자의 사업 구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17년 파운드리를 사업부로 독립시키고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2030년까지 파운드리 세계 1등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CAPEX를 메모리와 파운드리에 나눠 쓰고 있다. 지난해만 놓고 보면 전체 투자액 48조원 중에서 약 25~30조원을 메모리반도체에, 파운드리에는 약 15~20조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분야에서 타도 대상으로 삼고 있는 TSMC는 어떨까. TSMC는 2022년 363억달러(약 48조원), 2023년 302억달러(40조원)를 CAPEX에 썼다. 올해는 최대 320억달러(약 42조8000억원)를 CAPEX에 쓸 계획이다. 오로지 파운드리에 비중한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투자액과 비교해보면 규모가 2배를 훌쩍 넘는다. 투자 규모의 차이에 파운드리 업력,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등 여러 이유로 TSMC와 삼성전자의 점유율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트렌드포스 기준 2023년 3분기 TSMC 57.9%, 삼성전자 12.4%)

현재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를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메모리반도체 실적 악화, 파운드리 업황 부진, 순현금 감소, 대형 고객 확보의 어려움까지 겹쳐 투자 규모를 확 늘릴 수도 없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메모리와 파운드리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했지만 둘 다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50조원을 한 사업에 몰아서 투자해도 충분하지 않은데 어중간하게 나눠서 쓰고 있다 보니 결과를 못 내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엔 2019년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사업 본격화 선언과 관련해 "경영진 수뇌부가 너무 급하게 진행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당시 삼성전자가 갑작스럽게 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에 드라이브를 건 것이 '외풍' 때문이었단 전언도 나온다. 당시 정부의 시스템반도체 육성 정책에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던 삼성전자가 코 꿰어 끌려갔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손 꼽히는 반도체 전문가인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재료공학부)는 "메모리와 파운드리로 자원을 배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삼성전자가 둘 다 성과를 못 내는 점이 뼈아프다"며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HBM 핵심 인력들 경쟁사로 유출
파운드리로 자원이 배분되면서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사업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는 평가가 있다. 한정된 자원을 나누어 쓰다 보니 신제품 개발 등에서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삼성전자 DS부문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연구소의 R&D 전용 라인이 2개라고 가정하면, 과거엔 D램과 낸드플래시가 하나씩 썼다. 지금은 D램과 낸드플래시가 합쳐서 한 개를 쓰고, 나머지 한 개를 파운드리가 활용한다. R&D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2010년대 들어 CEO를 맡았던 전직 삼성전자 DS부문장들이 '비용 절감'을 강조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R&D 투자 역량이 상당히 약해졌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을 육성하면서 메모리반도체 우수 인력이 옮겨간 것도 메모리 사업 경쟁력이 약화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인력 유출 문제도 삼성전자 메모리 경쟁력 약화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실제 현재 삼성 경쟁사의 메모리반도체 담당 임원과 직원 중엔 당시 이직한 삼성전자 출신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에서 경쟁사로의 이직은 임원을 보장 받는 경우가 아니고선 흔치 않은 일이었다"며 "최근 2~3년 간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업계에선 삼성전자가 3세대 HBM으로 불리는 'HBM2E'에서 시장 주도권을 잡았지만, 최근 경쟁사에 밀리고 있는 원인도 내부 인력을 제대로 잡아두지 못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삼성 안팎에선 전직 경영진이 HBM 시장의 성장성을 '크지 않다'고 판단, 관련 인력을 푸대접한 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이란 얘기도 있다.
경계현 사장 취임 이후 R&D 경쟁력 강화에 시동
현장의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제품 개발 일정 관련 '하향식' 명령도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2020~2021년 낸드플래시 개발 때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반도체 기업끼리 셀을 수직으로 많이, 밀도 있게 쌓아 올리는 '적층' 경쟁이 붙었다. 삼성전자는 타사와 달리 128단 낸드플래시까지는 한 번에 쌓아 올렸다. 이른바 '싱글 스택'이다. 경쟁사가 두 번 쌓을 걸 한 번에 쌓아 올리니까 비용 세이브가 됐고. 그만큼 돈을 많이 벌었다.

176단에선 상황이 뒤바뀌었다. 176단도 한 번에 쌓아 올리려고 갖은 수를 써서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낸드플래시 5위권 업체 마이크론보다 개발이 늦는 '굴욕'을 맛봐다. 당시 삼성전자 낸드플래시 사업부서에선 "176단은 더블 스택으로 가야 한다"고 보고했지만, 최상위 경영진이 싱글 스택을 밀어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삼성전자는 싱글 스택을 포기하고 두 번 쌓는 걸로 바꿔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도 삼성전자에서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며 "D램의 경우 10나노미터 5세대와 6세대 등 1~2년 뒤 양산할 제품과 차세대 제품을 동시에 개발하라는 일정이 하달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들이 허덕이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업계에선 현재 DS부문 CEO를 맡고 있는 경계현 사장 취임 이후 반도체 미래 기술 개발에 대한 회사 차원의 투자가 본격화됐다는 점에 대해 '다행'이란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2022년 8월 기흥 반도체 R&D 단지 기공식을 열고 2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곳엔 2025년 가동 예정인 반도체 R&D 전용라인을 포함한 첨단 연구 시설이 들어선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기공식 때와 지난해 10월 기흥 R&D 단지를 찾아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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