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다는 것들의 쓸모'로 투박한 위로를 건네다

입력 2024-02-05 17:43   수정 2024-02-06 00:33


침목, 폐자재, 고철….

쓰임을 다한 사물들이 따스한 위로를 건네는 사람의 얼굴이 되고, 각자의 개성이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풍경이 된다. 지난 30여 년간 생활폐기물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여온 조각가 정현(67·사진)에게 쓸모없는 것이란 없다. “남들이 보기엔 하찮은 것들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남모르게 살아가며 세월의 무게를 이겨낸 이들의 강인함을 노래하고 싶어요.”

작가가 최근 머문 곳은 전남 여수의 한 레지던스. ‘원점으로 돌아가자’며 3개월간 마음을 비워내기 위해 산책에 나선 장소다. 발길에 차이는 숱한 돌멩이도 쉽게 넘기지 않았다.

이들의 덩어리진 시간은 작가의 손을 거쳐 스티로폼 조각으로 다시 태어났다. 남현동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덩어리’에서다. 1990년대 이후로 제작한 침목, 아스팔트 기반의 조각부터 녹슨 철판을 활용한 드로잉, 3D 프린팅 기술을 접목한 근작까지 30여 점을 담은 회고전이다.

작가는 30세의 늦은 나이에 프랑스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에서 갈고닦은 사실주의적 표현 기법을 선보였지만,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 동료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철학적 사유가 결여된 작품’이라고 평가받았다. 작가는 일반적인 도구인 조각도나 헤라 대신 삽과 톱, 도끼를 들기 시작했다. 버려진 사물에 대한 관심도 이때 싹텄다.

대표작 ‘서 있는 사람’은 침목을 거칠게 잘라 만든 작품이다. 미완성품처럼 거칠고 투박하지만, 동시에 강인한 생명력이 돋보인다. 각박한 하루를 이겨내며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을 형상화한 작품 50점은 프랑스 팔레루아얄 정원에 2016년 전시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한다. ‘녹 드로잉’은 흰 철판에 의도적으로 흠집을 낸 뒤 비 오는 날에 노출해 녹이 흘러내리도록 의도한 작품이다. 철판이 산화되며 작품이 되기까지 길게는 5~6년씩 걸리기도 한다. 작가는 “나는 흠집만 냈을 뿐, 자연과 시간이 그려준 것”이라고 말한다. 전시는 3월 17일까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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