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연 칼럼] 플랫폼법에 도사린 거대한 행정 편의주의

입력 2024-02-05 17:48   수정 2024-02-06 00:21

중국 사회에는 근대까지 전족(纏足)이란 관습이 있었다. 여성의 발을 옥죄어 기형적으로 작게 만드는 가학적 행위였다. 음양사상을 심미관에 투명해 작은 발을 여성미의 극치로 추앙했다는 것은 그럴듯한 변명일 뿐, 실상은 여성 활동력을 제한해 조용한 규방에 머무르며 남성에게 의존하도록 하는 거대한 권위적 이데올로기의 압제였다.

플랫폼업계에 이런 ‘전족 공포’가 커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말 국무회의 보고를 통해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 추진을 공식화하면서다. 아직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크고 힘센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자사 우대·끼워팔기 등 반칙행위를 금지한다는 게 골자다.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를 막고 경쟁을 촉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이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특정 플랫폼을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사전 규제’하는 방식부터 그렇다. 경쟁법을 두고 있는 세계 어느 나라도 이처럼 지배적 사업자를 사전에 지정하는 사례는 없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높다고 해서 사전 규제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공정위가 열거한 플랫폼의 반칙행위는 현행 공정거래법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조항으로 충분히 규율이 가능한 것들이다.

“플랫폼 시장은 전통시장에 비해 독과점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기존의 사후적 경쟁법으로는 반칙 행위와 시정 조치 사이에 시차가 발생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문제’가 반복된다”는 게 공정위가 밝힌 사전 규제 취지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공정위가 역량 부족으로 인해 편한 방식을 선택한다는 자인에 다름 아니다. 속도가 문제라면 조직력 강화와 모니터링 확대 등 내부 역량을 높여 푸는 게 맞다. 사전 규제가 아니라 ‘사전 지정, 사후 규제’라는 게 공정위 설명이지만 말장난에 불과하다. ‘위법성 입증 책임’도 이 법에 도사린 독소 조항이다. 공정위가 위법성을 증명하는 일반 공정거래법과 달리 정당한 사유에 대한 입증 책임을 플랫폼 사업자에게 떠넘긴다는 것인데, 권위적 관료주의에 기반한 편의적 발상이다. 이런 식이라면 국내 플랫폼은 사전 지정을 당하지 않기 위해 기업 규모를 키우려고 하지 않을 게 뻔하다. ‘혁신과 성장을 꺾는 전족법’이라는 우려가 기우만은 아니다.

역차별 우려는 또 다른 문제다. 공정위는 이 법을 국내외 사업자 모두에게 적용할 것이라는 이유로 “국내 사업자만 규율을 받게 돼 역차별 우려가 있다는 건 거짓 뉴스”라고 한다. 하지만 중국 기업과 사실상 이들을 관리하는 중국 정부를 상대로 규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실제 믿는지 의문이다.

중국 1, 2위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와 핀둬둬가 운영하는 해외직구 앱 알리와 테무가 국내 시장을 급속도로 잠식하는 판이다. 이들은 한국 내 매출조차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 알리바바 매출은 약 158조원(2021 회계연도 기준)으로 네이버의 80배, 쿠팡의 40배에 이른다. 국내 온라인 시장이 이들 플랫폼 생태계에 포획되면 그때는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소상공인과 소비자에게 돌아오게 마련이다. 이러니 공정위가 이 법을 통해 보호하겠다는 국내 스타트업계를 비롯해 소비자단체, 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까지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쯤 되면 ‘민생 살리는 법안’이라는 공정위 주장이 무색해진다.

그런데도 기존 공정거래법으로 충분히 처분 가능한 행위를 굳이 독소조항과 역차별 우려가 심각한 규제 방식을 동원해 국내 대형 플랫폼의 손발을 묶겠다는 규제당국 의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정말 국내 산업 생태계 발전과 민생을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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