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 왕국' 일본…100년 넘은 기업만 4만5000곳

입력 2024-02-05 18:03   수정 2024-02-13 16:51

올해로 창업 100주년을 맞은 일본 기업이 2519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사업승계를 지원하는 제도에 힘입어 일본의 노포 기업은 처음 4만5000곳을 넘겼다.

5일 시장조사업체 도쿄상공리서치에 따르면 일본 기업 2519곳이 2024년 창업 100주년을 맞는다. 공조기기 대기업인 다이킨공업, 제지회사 고쿠사이카미펄프상사, 산업용 기계 제조사 마에카와제작소 등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해당한다.

‘제조 강국’ 일본답게 올해 100주년을 맞는 기업의 23.5%가 제조업체였다. 소매업체(23.5%)와 도매업체(19.3%) 등 오랫동안 상업이 발달한 전통도 ‘100년 기업’ 등장을 거들었다. 건설회사는 15.9%로 뒤를 이었다. 도쿄상공리서치는 “세계대전과 대공황, 간토대지진, 오일쇼크, 버블(거품)경제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 동일본대지진, 코로나19 등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은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사이타마현의 건설회사 야마토야 등 올해로 200주년을 맞은 기업은 6곳이다. 이바라키현의 결혼식 전문업체 이세진혼샤 등 5곳은 300주년, 나가사키현의 유명 카스텔라 업체 후쿠사야 등 8곳은 400주년을 맞는다.

야마나시현의 불교용품 전문점인 슈미야신불구점은 창업 1000주년을 맞았다. 이에 따라 일본의 ‘1000년 기업’은 8곳으로 늘었다. 서기 578년 창업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곤고구미와 기네스북이 인증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숙박시설 게이운칸(창업 705년) 등이 창업 1000년이 넘는 기업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1~5위가 모두 일본에 있다.

일본에 100년 기업이 많은 이유로 가업을 승계하는 전통과 제도적 지원 등이 꼽힌다. 일본은 1947년까지 장남이 가업과 유산을 상속·승계하는 것을 의무화한 가독상속 제도를 유지했다. 장남은 집안 유산을 혼자 물려받는 대신 가업을 다음 세대로 이어줄 의무를 졌다. 일본 정부는 장남이 가업을 물려받으면 상속세를 매우 낮은 수준으로 감면해줬다.

2000년대 들어 저출산·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중소기업들의 후계자난이 심각해지자 세대교체를 지원하는 법도 마련했다. 일본 정부는 2009년 중소기업 경영승계원활화법을 제정해 기업을 승계한 후계자가 물어야 할 상속·증여세를 유예 및 면제하고 있다.

비상장 중소기업 승계는 전체 주식의 3분의 2까지 상속세와 증여세를 각각 80%, 100% 유예한다. 5년간 고용 80% 이상 유지 등을 만족하는 조건에서다. 후계자가 사업을 5년 이상 계속하다가 다른 후계자에게 물려주면 유예된 세금을 면제받을 수도 있다.

2018년 기업 승계 세제 혜택을 더 확대한 특례조치를 10년 기한으로 도입했다. 세금을 유예 또는 면제받을 수 있는 주식 수를 ‘3분의 2’에서 ‘100%’로 늘렸다. 80%이던 상속세 유예 비율도 100%로 올렸다. 이 같은 제도적인 지원 등의 영향으로 2018년 3만4394곳이던 일본의 ‘100년 기업’은 올해 4만5189곳으로 31% 증가했다. 시장조사업체인 데이코쿠뱅크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에서 창업한 지 100년 넘은 기업은 약 7만5000곳이다. 이 가운데 60%가량이 일본 회사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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