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난다면 1초도 허비하지 않을 텐데!" [고두현의 문화살롱]

입력 2024-02-06 18:01   수정 2024-02-07 00:13


1849년 겨울, 칼바람이 몰아치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세묘놉스키 연병장. 수천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반체제 지식인들이 끌려 나왔다. 한 장교가 “죄인들을 반역죄로 다스려 모두 총살한다”고 선고했다. 무장한 병사들이 머리에 두건을 씌웠다. 곧이어 사격 대열을 갖췄다. 일제히 총알을 장전하는 소리,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갖다 대는 병사들….

일촉즉발의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멈추시오!” 황제의 시종무관이 특사령을 갖고 황급히 달려왔다. 숨을 죽였던 사형수들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터졌다. 이날 두 번째 줄에 서 있던 사형수 중 한 명은 28세 청년 작가 도스토옙스키(1821~1881). 죽음 직전에 회생한 그는 강제 노동형으로 감형돼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4년간 유형 생활을 한다.
인생이 장엄하고 비옥하려면
그는 당시 죽다 살아난 체험과 심리 변화를 장편소설 <백치>에 이렇게 묘사했다. “만일 내가 죽지 않는다면 어떨까, 만일 생명을 되찾게 된다면 어떨까, 그것은 얼마나 무한한 것이 될까, 그리고 그 무한한 시간이 완전히 내 것이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나는 1분의 1초를 100년으로 연장시켜 어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1분의 1초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한순간도 헛되이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그의 내면이 너무도 생생하다. 그는 <죄와 벌>에서도 죽음 직전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어떤 사람이 죽기 한 시간 전에 이런 말을 했다던가, 생각했다던가. (…) 평생, 1천 년 동안, 아니 영원히 1아르신(0.7㎡)밖에 안 되는 공간에 서 있어야 한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지금 죽는 것보다는 사는 편이 더 낫겠다고 했다지! 살 수만 있다면, 살 수만, 살 수만 있다면! 어떻게 살든, 살 수 있기만 하다면…!”

사실은 황제가 ‘처형 쇼’를 통해 자유주의 청년들을 혼내주려 한 것이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도스토옙스키는 완전히 거듭났다. 그에게 살아있음의 의미와 가치는 모든 것을 초월했다. 4년 동안 극한의 동토에서 유형 생활을 하는 도중, 그는 인간 이하의 삶을 견디면서 수형자들의 일상과 정신세계를 깊이 관찰했다. 그가 유형지에서 발견하고 탐구한 인간 본성의 핵심은 ‘자유’였다.

도스토옙스키 연구자인 석영중 교수에 따르면 그는 자유를 본능과 가치로 나누어 보았다. 본능으로서의 자유가 극대화된 상태는 악, 가치로서의 자유가 극대화된 상태는 선으로 봤다. 하지만 어떤 인간도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최고 가치로서의 자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지향을 둔 삶을 중시했다. 그의 작품들도 ‘자유를 획득한 인간’이 아니라 자유를 향해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해서 불후의 명작들이 탄생했다. 그의 작품에는 극도로 세밀하고, 집중적인 묘사가 많다. 주제도 다양해서 살인, 범죄, 자살 같은 끔찍한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런데도 그의 소설이 지향하는 궁극의 종착지는 삶에 대한 긍정과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그에게 삶은 죽음의 벼랑에서 극한의 고통을 뚫고 피어난 꽃이다. 그만큼 간절하고 숭고하다. 수용소에서 달빛에 비춰 읽던 신약성경의 한 페이지처럼 하루하루가 빛이면서 또 생명이다.

이럴 때 삶과 죽음은 거울의 양면이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 또한 삶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 도스토옙스키 평전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는 나아가 “죽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항상 마음속에 간직해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인생은 더욱 장엄해지고, 중요해지고, 비옥해지고, 더 즐거워진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남은 생을 또 어떻게 살아야 할까. 도스토옙스키보다 1세기 후에 태어난 프랑스 철학자 로제 폴 드루아는 <내게 남은 삶이 한 시간뿐이라면>이라는 책을 통해 이렇게 답한다. “무심코 지나치던 1초마저도 의미 있고 소중해지는 삶의 마지막 순간이 모든 인생을 통틀어 수많은 근심과 속박에서 벗어난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다. 그때야 비로소 인생을 마주 볼 수 있게 된다.” 그 시간 동안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한 걸음 떨어져서 삶을 바라볼 때 비로소 인생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남은 삶이 한 시간뿐이라면 …'
“앞에서 마주 볼 수 없는 것은 태양과 죽음만이 아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인생도 그렇다. 우리가 삶을 볼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바다나 산, 지는 해를 바라보듯이, 갈매기가 날고 말이 달리는 걸 관찰하듯이 인생을 바라볼 수 있으려면 그 바깥에 있어야 한다. 밖에서 주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한 시간 동안에는 “글을 쓰겠다”고 했다. ‘나’는 한 시간 뒤에 사라질지라도 글은 계속 살아남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야말로 죽어서도 영원히 사는 불멸의 거장이다. 그가 남긴 명작의 빛이 지금도 온 세상을 비추고 있다. 그의 묘비명에 새겨진 ‘요한복음’의 한 구절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처럼 그는 문학의 땅에 떨어져 수많은 열매를 맺게 한 밀알이다.

그가 죽음을 몇 달 앞두고 극심한 분열 속의 러시아 사회를 향해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서구파와 슬라브파의 반목을 넘어 우리는 진정한 화합과 화해, 상생과 공존을 실천할 수 있는 깊은 내공을 지니고 있다”고 역설했을 때, 이에 열광한 국민들은 그를 ‘살아있는 예언자’로 추앙했다. 이 또한 삶과 죽음, 나와 세계,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본 그의 ‘깊은 내공’ 덕분이었다. 모레는 그의 기일(忌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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