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동남부 지역 11개 주에는 지난해 2월 진도 7.7의 지진이 발생했다. 당시 지진으로 5만3537명이 사망했고, 10만여 명이 다쳤다. 이재민 피해는 약 1400만 명에 달했다. 말라티아주에서도 이재민 11만7232명이 발생했다.
지난해 2월 세계은행은 튀르키예의 대지진 피해액이 342억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2021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약 4%다. 2차 피해액을 합산하면 총피해 규모는 GDP의 10%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 같은 대규모 재해를 겪고 나서도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지진 발생 후 3개월 만인 작년 5월 제지산업을 제외한 모든 산업 분야의 성장률이 지진 이전으로 돌아왔다.
앞서 공급망 시장조사기관 레실링크가 예상한 제조업 정상화 기간(약 8개월)보다 대폭 단축된 것이다. ING그룹에 따르면 작년 10월 말 기준으로 튀르키예의 산업생산은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하며 지진 피해 전 증가율 평균치에 근접했다. 실업률은 8.5%로 201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튀르키예 실질 GDP 증가율은 4%로 추정된다. 2022년(5.5%)에 비해서는 낮지만 웬만한 주요 국가를 능가하는 수치다. 올해 GDP 증가율도 3.1%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된다. 튀르키예 국채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해 8월 6.79%포인트에서 올해 2월 2.80%포인트로 감소했다. CDS 프리미엄은 국가 신용 부도 가능성을 나타내는 척도다. 파잘렛 세비치 아크파르티 튀르키예 여성협회 이사는 “1999년도에도 대지진을 겪었지만 위기에 처하면 다 같이 극복하는 게 튀르키예의 국민성”이라고 말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경제 실책이 고물가 요인으로 지목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고금리 정책을 ‘악(惡)’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2003년 총리에 취임해 처음 정권을 잡고 나서는 개방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2018년 의원내각제를 폐기하고 대통령제를 부활시킨 뒤 권력을 독점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밀어붙였다. 2021년에는 ‘신경제정책(NEP)’을 추진했다. 금리를 공격적으로 인하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슬람교 교리인 ‘샤리아’를 따른 경제정책이란 해석이다.
샤리아에선 ‘라바’(이자)를 금기시한다. 통화를 사고파는 여·수신 행위를 사회적 죄악으로 바라봐서다. 이 때문에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2021년 9월 연 19%에서 지난해 2월 연 8.5%까지 낮췄다.
인플레이션이 심화하자 튀르키예 정부는 지난해 6월 중앙은행 총재를 교체하고 기준금리를 5개월간 25%포인트 인상했다. 다만 최저임금도 49% 인상하며 통화 긴축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가 상쇄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하면서 고물가가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셀마 데미랄프 이스탄불 코치대 교수는 “비상식적인 경제정책에 따른 피해가 지진 피해를 넘어서고 있다”며 “정책 실패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말라티아=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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