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동남아시아의 '세습 민주주의'

입력 2024-02-15 17:38   수정 2024-02-16 00:36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군부 엘리트가 주무르던 인도네시아 정계에서 서민 출신으로 2014·2019년 대선에서 연거푸 승리했다. 당시 그의 상대는 ‘철권 통치자’ 수하르토의 사위이자 군 출신인 프라보워 수비안토였다.

그런 조코위가 엊그제 대선에선 프라보워를 밀었다. 대신 프라보워는 조코위의 장남, 37세의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 수카르타 시장을 부통령 후보로 발탁했다. 이 과정도 시끄러웠다. 기존 선거법에 따르면 만 40세 이상만 대통령·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선출직 경력이 있는 자는 나이와 관계없이 출마할 수 있다’며 길을 터줬다. 당시 헌재 소장은 조코위의 매제였다. 조코위는 과거 “한국의 경제 성장과 민주화 동시 달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인도네시아를 한국처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지에선 조코위가 권력 세습을 위해 군부와 결탁해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선 세습 정치가 여전하다. 캄보디아에선 38년간 권력을 휘두른 훈센 전 총리의 장남 훈마넷이 지난해 8월 총리에 취임했다. 선거를 치르긴 했지만 결과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필리핀에선 독재자로 악명을 떨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 딸이 2022년 6월 나란히 대통령과 부통령이 됐다. 태국에선 부패 혐의를 받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 가문에서 여동생과 매제까지 3명의 총리가 나왔다. 지난해 총선 때 미국 하버드대 출신 40대가 이끄는 야당 전진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제1당이 됐지만 군부 반대로 집권에 실패했다. 싱가포르에선 30년 넘게 집권한 국부 리콴유 전 총리에 이어 아들 리셴룽 총리가 20년째 권력을 잡고 있다.

동남아에선 국가를 가정으로 보는 관념이 강하기 때문에 세습 정치가 기승을 부린다는 해석이 있다.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 등 서방 국가의 눈치를 덜 보게 되고 그 결과 민주주의가 쇠퇴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얘기다.

주용석 논설위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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