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의료진 해냈다…"XR 방사능 재난 시스템 세계 최초 개발" [강경주의 IT카페]

입력 2024-02-19 14:33   수정 2024-02-19 14:37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과학자로 평가받는 마리 퀴리(퀴리 부인)는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이자 서로 다른 분야(화학·물리)에서 두 번이나 수상한 유일한 인물이다. 업적을 인정받은 그는 사망 후 프랑스의 위인이 묻힌 파리의 '판테온'에 시신이 안치됐다. 총 80명이 묻힌 이곳에 퀴리 부인의 관만 3㎝ 두께의 납으로 차폐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가 사망한지 9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신에서 방사선이 방출되고 있어서다.
VR 기기로 체험헤보니…눈 앞에 방사능 재난 상황 '생생'
조민수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비상진료정책부장(전문의)은 19일 "퀴리 부인조차 자신이 방사선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방사선은 인간의 오감으로 감지할 수 없어 사전 교육이 유일한 대비 방법"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조 부장이 퀴리 부인에서 방사선 교육으로 주제를 전환한 이유는 최근 5년 간 방사선 안전사고가 눈에 띄게 늘었기 때문이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의 방사선안전관리통합정보망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9년2월15일~2024년2월15일) 방사선안전사고 보고사건은 총 149건으로, 직전 5년(2014년 2월15일~2019년 2월14일)의 74건에 비해 101% 증가했다.

방사선 교육 필요성이 커지자 비상센터는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4년 간 총 22억2040만원을 지원받아 세계 최초로 방사선 비상진료 확장현실(XR) 교육 콘텐츠를 개발했다. 비상센터는 방사선 비상 진료를 총괄하는 조직으로, 방사선 대응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 전국 31개 기관에서 900여명의 방사선 비상진료요원을 관리하고 있다.

조 부장은 "특수재난으로 분류되는 방사선 사고는 의사라고 해도 사전 교육을 받지 않으면 우왕좌왕한다"며 "방사선 교육에 XR을 접목하면서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방사능 재난 대비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강조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원자력 선진국에서도 XR 시스템은 전무하다.

최근 애플의 '비전 프로' 출시와 메타의 '메타 퀘스트3' 판매 증가로 VR 기기 보급이 보편화됐다는 점도 XR 콘텐츠 개발에 나선 배경이다. 조 부장은 "현행 교육과정은 도상훈련(지휘소 연습)과 마네킹 실습 중심의 교보재 훈련이 주를 이뤄 공간 제약과 비용 문제가 제기됐다"며 "XR로 교육하면 현행 과정의 한계점을 보완하고 방사능 재난 상황에 대한 교육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콘텐츠는 △중증도 분류 △방사선 피폭환자 처치 △방사선 계측장비 활용 △HICS(방사선 사고 대비 병원 의사결정) △상황실(합동방사선비상진료센터) △다각도 영상(피폭환자 대응절차) △강의 자료실 등 8종으로 구성됐다.

실제로 체험해본 XR 콘텐츠는 기대 이상이었다. 머리에 VR 기기 착용 후 핸들패드를 손에 쥐자 눈 앞에 급박한 재난 상황이 펼쳐졌다. 가상의 회사에서 방사성동위원소를 내장한 기기가 폭발한 상황을 가정해 방사선 피폭자가 발생한 시나리오가 펼쳐지면서 눈앞에 아수라장이 그대로 구현됐다.

기자는 직접 의료진이 돼 오염 확산 방지와 대응 준비, 방호복 및 개인선량계 착용, 환자 상태 확인 및 분류, 의료적 판단을 통한 제염·처치, 환자 안전 확보 후 병동 이송과 귀가 처리, 사고 대응 인력의 피폭 여부 확인과 현장 정리 등 전 과정을 직접 수행했다. 특히 핸들패드로 피폭 부위의 피폭량을 조사하고 응급조치를 한 제염·처치 콘텐츠 완성도가 뛰어났다.

조 부장은 "현실세계에서 구현이 어려운 다양한 방사선 사고와 재난을 모사해 대응력을 끌어올렸다"며 "시간, 공간, 비용 제약 없이 방사선 비상진료요원의 전문성을 높인 것은 물론 실습 재료 소모도 줄였다"고 말했다.
"동료 연구원들 없었다면 성과 못냈을 것"
XR 교육은 방사선 비상진료요원과 초동대응요원을 대상으로 지난해부터 7차례 시범운영이 진행됐다. 총 151명의 피교육생을 상대로 교육 후 설문조사를 한 결과 '성취감을 느꼈다' 문항에 '매우 그렇다'라는 응답이 47%(71명), 'XR을 활용한 교육이 확대되길 원한다' 문항에 '매우 그렇다'라는 응답이 64%(111명)에 달하는 등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개발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조 부장은 "한국이 무슨 방사선 교육 콘텐츠를 만드냐는 핀잔을 많이 들었다"며 "정보기술(IT) 개발자도 아닌 의사가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선다고 하니 회의적인 반응이 대다수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XR 콘텐츠를 개발한지 3년 만에 180도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국제 방사선 학회에서 발표 후 찬사가 쏟아졌다"며 "동료 의사들과 연구원들이 없었다면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상센터는 교육생의 접근성과 편의성 향상을 위해 제주 워크숍, 중부권 교육 등 지방 교육을 확대하고 난이도별 학습 강화와 웹 버전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시범운영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종합해 최적화 작업을 거쳐 오는 10월 최종 버전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조 부장은 "방사선 교육은 국민 안전과 직결된 만큼 정부의 관심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훈련 규모를 확대하고 다양한 상황을 설정해 훈련 고도화를 꾀하겠다"고 말했다. 김성규 원안위 방사선방재국장은 "내부적으로 반응이 좋아 예산 지원 확대를 검토 중"이라며 "완성도가 높은 만큼 일반인 등으로 교육 대상을 확대해 국가 차원에서 방사선 대비 효과를 극대화하겠다"고 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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