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ELS 피해자와 피해 호소자

입력 2024-02-18 17:53   수정 2024-02-19 00:31

얼마 전 고향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안부를 묻는 것도 잠시, 친구는 대뜸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얘기부터 꺼냈다. 금융회사가 배상하는 시기가 언제쯤일지, 배상 비율은 어느 정도가 될지 궁금하다고 했다. 장인이 ELS 투자로 3000만원 가까운 손실을 봤다는 하소연도 이어졌다. “어르신이 불완전 판매에 넘어간 것 아니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무슨 소리야. (장인이) 5년 넘게 투자했는데…. 당연히 깨질(원금 손실) 가능성도 알고 있었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홍콩H지수 ELS로 손실을 본 이들은 피해자일까, 아니면 피해 호소자일까. 일단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사례를 보면 불완전 판매에 따른 피해자들이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은행 창구 직원이 팔순 노인에게 원금 손실 가능성을 숨긴 채 상품 가입을 권하거나 암보험금 수령자에게까지 상품 가입을 유도했다고 한다.
정서법에 가려진 투자자 책임
이는 수수료에 목맨 은행의 탐욕과 맞물린다. 은행은 ELS 상품을 팔 때마다 가입자로부터 선취 수수료(약 0.8~1.0%)를 뗀다. 조기 상환이 이뤄지는 6개월마다 재투자를 권하고 그때마다 수수료를 또 챙긴다. 은행은 직원 인사평가 지표에 판매 실적까지 반영해 이런 행태를 부추겼다.

다른 시각도 있다. (국민정서법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이번 기회에 투자자 책임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따지고 보면 ELS는 일종의 ‘베팅형 상품’이다. 투자한 상품의 기초지수(또는 종목)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통상 정기예금의 두 배 이상의 금리를 받는다. 2006년 은행들이 판매를 시작한 이후 ELS가 20년 가까이 대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이유다.

ELS 투자로 재미를 본 뒤 다시 투자에 나선 이들이 90%를 넘어서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만큼 이 상품에 익숙한 투자자가 많다는 얘기다.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주장도 먹혀들기엔 녹록지 않은 구조다. 은행들이 2021년부터 녹취를 강화하고 필수 설명 등을 인공지능(AI) 시스템을 통해 읽어주고 있어서다.
불완전 판매 막는 대안 고민해야
국내법은 이렇다. 투자자 책임 원칙에 따라 손실 보전은 명백하게 금지(자본시장법 제55조)돼 있다. 삼성전자 주가나 비트코인 가격이 내려가도 해당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전해주지 않는 이유다. 다만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위법한 행위’가 드러날 경우엔 손해배상(민법 750조)을 받을 수 있다. 불완전 판매에 속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배상은 가능하지만, 원금을 일부 떼일 가능성을 알고도 투자한 ‘피해 호소자’의 손실까지 보전해줄 근거는 전혀 없다는 뜻이다.

세상만사를 관통하는 정답은 없다. 분명한 것은 금융당국이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자율 배상 압박에만 열을 올리는 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차라리 고위험 상품을 팔 수 있는 은행별 거점 점포를 지정하거나 상품 판매 총량을 정해 과당 경쟁과 불완전 판매를 최소화하는 게 낫다. 원금 손실률이 20~30%를 넘지 않는 저·중위험 상품만 은행에서 팔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피해자’와 ‘피해 호소자’를 모두 줄일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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