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버려진 탄광촌의 기적…연 1조 문화예술 '금광'을 캐다

입력 2024-02-26 18:52   수정 2024-02-27 01:06


지난 4일 방문한 영국 북동부 게이츠헤드. 이 도시는 고속도로 초입부터 범상치 않은 경관으로 시선을 빼앗았다. 광활한 언덕 위에서 제트기도 족히 품을 듯한 거대한 양 날개를 펼친 채 관람자를 향해 약간 기울어져 있는 20m 높이의 철제 천사상은 보는 순간 말을 잃을 만큼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다. 세계적인 현대 조각가 앤터니 곰리의 대표작 ‘북방의 천사’였다. 도심으로 들어섰을 땐 이미 상당한 인파가 길목 곳곳을 메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1999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 음악당 ‘더 글라스 하우스’와 테이트 모던에 이어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현대미술관인 ‘발틱 현대미술관’을 연신 오가며 작품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데 여념이 없었다.

클래식 음악, 서양 미술의 본고장 유럽에 속한 만큼 애초부터 문화 예술 산업에 강했던 도시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게이츠헤드는 1900년대 초·중반까지 석탄·철강·조선 산업에 철저히 주력해온 ‘탄광촌’이었다. 1970~1980년대 중공업 전체가 무너지면서 대규모 실업자 발생, 인구 유출 등의 늪에 빠진 게이츠헤드를 구해준 건 다름 아닌 문화 예술이었다. 시의회는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마중물로 ‘랜드마크’를 고안했고, 1998년 그 결과물로 너비 54m, 무게 200t에 달하는 앤터니 곰리의 철제 조각상 ‘북방의 천사’를 세상에 내놓았다. 브라이언 휴잇슨 게이츠헤드 시의회 매니저는 “80만파운드(약 13억4000만원)라는 비용 부담에 주민들의 비난도 있었지만 우린 문화 예술 투자를 끝까지 고집했다”며 “그것이 우리의 도시를 특별하게 만들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방의 천사’의 성공은 게이츠헤드가 본격적으로 문화 예술 산업 중심으로 체질 전환에 나서는 토대가 됐다. 2001년 타인강 위에 세계 최초의 기울어지는 인도교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설했고, 이듬해엔 버려진 밀가루 공장을 개조한 ‘발틱 현대미술관’을 열었다. 발틱 제분공장 등의 간판이 그대로 달려 있는 이 미술관은 나라 요시토모, 마크 월린저, 마이클 라코비츠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입소문을 탔다.

2004년엔 유명 건축가 노먼 포스트와 손잡고 1600석 규모의 대공연장 등을 갖춘 음악당 ‘더 글라스 하우스’를 세웠다. 방치된 공업 용지를 활용한 이 건물을 짓는 데 들어간 비용은 총 7000만파운드(약 1200억원)인데, 음악당이 지난 20년간 창출한 경제적 가치는 총 5억파운드(약 8400억원)로 추정된다. 프레이저 앤더슨 더 글라스 하우스 전무이사는 “BBC 프롬스 같은 세계적인 음악 축제가 런던 이외 지역에서 열린 건 더 글라스 하우스가 최초”라며 “우리는 일회성 협력이 아니라 좀 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있다. 이건 분명 우리의 관객층 저변을 확대하고, 수익성을 향상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게이츠헤드의 문화 예술 산업 투자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게이츠헤드 시의회는 지난해 초 영국 정부의 레벨링업펀드로부터 2000만파운드(약 340억원)의 자금을 확보해 1만2500석 규모의 세이지 아레나와 국제 콘퍼런스센터(ICC) 건립을 추진 중이다. 마틴 개넌 게이츠헤드 시의회 의장은 “세이지 아레나, ICC 신설은 게이츠헤드를 영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로 변화시킬 것”이라며 “이번 프로젝트로 100만 명 이상의 추가 방문객과 2000개의 일자리 창출, 연간 9900만파운드 이상의 직접 투자 등의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게이츠헤드=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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