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14곳 "의사 없다"…복통·하혈 환자, 병원 찾아 3시간 헤맸다

입력 2024-02-26 18:49   수정 2024-02-27 00:58


“환자는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데 암 수술이 급하지 않다면 어떤 수술이 급한 것인가요.”

26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암 환자의 자녀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정진행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암 수술은 본래 응급수술이 아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서운함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정기검진차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가 이런 소식을 접했다.

정 위원장의 발언과 달리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1주일 넘게 이어지면서 환자들은 극심한 불안감을 호소했다. 전국 병원에서 의료 공백을 메우고 있는 전임의(펠로)까지 이달 말께 이탈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일선 의료진의 ‘번아웃’이 심각한 상태다.
극심한 불안감 호소하는 환자들
이날 환자 이모씨(60)는 “오전 일찍부터 병원 10여 곳에 전화를 돌린 뒤에야 겨우 응급실을 방문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뇌졸중을 앓았던 그는 안면마비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지만 그는 “안면마비가 재발하면 다시 받아줄 병원이 있을지 두렵다”며 “하필 이때 안면마비가 나타나 매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췌장암 3차 항암치료를 위한 입원을 앞두고 병원을 찾은 B씨는 “교수님이 ‘이러다 우리가 먼저 가겠다’는 말을 하더라”라고 전했다. 일선 의료진이 번아웃을 호소하면서 환자들에게까지 불안감이 전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 온라인 환자 커뮤니티에서 난소암 환자라고 밝힌 C씨(80)는 “국립암센터에서 28일 수술할 예정이었는데 지난주 갑작스레 취소되더니 무기한 연기된다고 통보받았다”며 “수술이 언제 가능한지 알 수 없어서 더 문제”라고 했다.
피로 쌓이는 의료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현장에 남은 의료진의 피로도 누적되고 있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교수는 “교수들이 전공의 업무인 당직 일정을 짜고 있다”며 “20·30대 전공의 시절엔 가능했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언제까지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의사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간호사들에게 의사 업무를 대신하도록 지시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간호사는 “당장 처방을 낼 사람이 없어 교수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받아 간호사들이 대신 처방을 내고 있다”며 “의료법 위반이지만 간호사들이 처방하지 못하면 환자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이 아플 때 제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게 복지의 핵심이고, 국가의 헌법상 책무”라고 강조했다.
전국 각지에서 이송 지연 잇따라
전국 각지에서 환자 이송 지연 사례가 잇따랐다. 대전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께 40대 남성이 경련을 일으켜 119에 신고했지만 의료진 파업 등으로 병원 여덟 곳에서 수용 불가를 통보받고 37분 만에 한 대학병원에 이송됐다. 전날엔 30대 외국인 여성이 복통과 하혈 등의 증세로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찾았지만 14곳에서 거부당해 3시간 만에야 대학병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4일에는 혈뇨와 옆구리 통증, 고열 등의 증세를 호소한 70대 여성이 병원 12곳에서 수용 불가를 통보받은 뒤 1시간 만에 자차로 서울의 한 병원으로 간 사례가 보고됐다. 부산에서도 이날까지 이송 지연 사례가 42건 발생했다. 이 중 6건은 부산에서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해 다른 시·도로 이송된 사례다. 이송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 것은 2시간 정도였다.

안정훈/양길성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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