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10년 묶인 판사 정원 이번 국회에서 풀어야

입력 2024-02-29 18:00   수정 2024-03-01 00:15

서울의 한 법원 판사였던 지인 A씨는 몇 해 전까지 매주 일요일 출근했다. 공무원이 왜 주말에도 근무하느냐는 핀잔에 그는 “봐야 할 재판 기록이 많다”며 출근을 당연하게 여겼다.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워라밸’ 문화가 생겨난 요즘 법원에선 보기 드문 풍경이다. ‘법관의 꽃’이라고 불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가 폐지되고 일을 많이 하는 판사를 대우하는 문화마저 사라지자 A씨는 법원을 떠났다.

온 나라가 의대 정원 2000명을 늘리는 문제로 열흘 넘게 몸살을 앓고 있지만 대법원 수뇌부의 최대 관심사는 판사 정원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다. 21대 국회 회기가 끝나는 오는 5월까지 처리가 안 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다음 국회에선 기획재정부 예산 심의 등 모든 절차를 원점에서 다시 밟아야 한다.

연초부터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법관 증원’을 내걸고 신숙희·엄상필 대법관이 인사청문회에서 증원에 한목소리를 낸 것은 그만큼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로비 의혹에 휘말린 뒤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에는 법관 증원 문제를 놓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역설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에 결사항전하고 있는 의사들의 행태가 법관 정원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판사 증원은 대법원의 숙원 사업이다. 2014년 마지막으로 법관 증원(370명)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된 뒤 판사 정원은 10년째 묶여 있다. 3214명인 판사 정원을 5년에 걸쳐 3584명으로 370명 늘리는 개정안을 2022년 12월 정부가 발의했지만 국회 논의는 2년째 답보 상태다.

법관 부족은 주 52시간제와 맞물리며 심각한 재판 지연을 야기하고 국민에게 큰 불편을 주고 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7년 평균 294일 걸리던 민사사건의 1심 판결이 2022년 420일로 43% 늘어났다. 법관 1인당 맡는 재판 건수는 미국(366건) 일본(151건) 독일(89건)과 비교해봐도 한국이 426건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따르면 사건 접수에서 첫 기일 지정까지 걸린 기간을 보면 민사 1심은 2010년 114일에서 2021년 141일, 형사 1심은 같은 기간 46일에서 82일로 길어졌다. 재판 전후 모든 과정의 지연 현상이 고질화한 셈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재판처럼 민감한 현안은 1심 재판에만 3~4년이 걸리는 사례도 허다하다.

만성적 재판 지연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지금이 해묵은 법관 증원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풀어낼 적기다. 비용 부담도 큰 편이 아니다. 국회는 매년 50~90명의 판사를 5년에 걸쳐 선발할 경우 인건비를 연 30억~50억원으로 추계했다. 다만 ‘판사가 부족해 재판이 지연된다’는 기존의 단순 논리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2014년 확정한 판사 증원 계획에 따라 2017년 2903명이던 판사가 2022년 말 3016명으로 늘었지만 민사 1심 재판 처리 건수는 102만 건에서 76만 건으로 오히려 줄었다.

가상자산, 금융범죄 등 날로 복잡해지는 사건과 200명이 넘는 육아휴직 및 연수 등에 따른 결원을 이유로 들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법원 내 업무처리 방식을 개선하지 않은 채 단순히 인원만 늘려서는 재판 지연을 해소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사법부의 숙원인 판사 증원 문제를 풀려면 14개월이 넘는 1심 판결 기간을 1년 이내로 줄이겠다는 등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해 설득력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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