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아직도 '물건'?…'펫심' 노린 입법 전쟁 [슬기로운 반려생활 ⑦]

입력 2024-03-10 09:00   수정 2024-03-10 17:53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아이를 키우는 가정보다 늘어나면서 반려가족을 위한 입법 전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반려동물을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펫 휴머니제이션' 현상이 나타나면서,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던 과거의 법 제도가 현실과 맞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반려동물과 관련한 법률은 크게 동물이 사람에 준하는 권리를 갖도록 보호하는 법안과 동물을 적절하게 관리하도록 하는 규제 및 지원법안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의 동물 관련 법안은 주로 전자에 중심을 두고 있다. 지난해 전부 개정되어 시행된 동물보호법이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 4·10 총선 공약으로 발표한 '동물복지' 공약 세트 역시 전자에 방점을 찍고 있다.
31년 만에 개정된 동물보호법
동물보호법은 동물의 생명을 보호하고 복지를 증진하는 동시에 건전하고 책임 있는 사육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1991년 제정됐다. △동물이 본래의 습성과 몸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도록 하고 △동물이 갈증이나 굶주림을 겪거나 영양이 결핍되지 않도록 할 것 등 기본적인 동물 보호의 기본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보호자의 의무뿐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 또한 규정해 동물을 적정하게 보호·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시책을 수립하도록 규정한다. 그중에서도 '농림축산식품부령'이 반려동물로 인정하는 개와 고양이, 페럿, 기니피그, 햄스터는 더욱 두텁게 보호한다.

동물보호법은 반려가구가 급증하고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변화됨에 따라 몇 차례 개정되다가 지난 2022년 4월 26일 전부 개정되어 지난해 4월 27일 시행됐다. 동물 학대를 예방하고 반려동물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매년 10월 4일을 '동물보호의 날'로 지정하는 내용을 동물보호법(제4조의2 동물보호의 날)에 명시하고, 유기되거나 학대받은 동물을 구조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제34조 동물의 구조·보호)를 신설했다. 동물 학대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해 동물을 학대하거나 사육·관리 의무를 소홀하게 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반려동물을 유기할 경우 이전에는 단순 과태료 처분을 받았지만, 이제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형사사건'으로 처리돼 전과 기록도 남는다.

맹견과 관련한 사육 허가 제도도 도입해 개 물림 사고를 예방하도록 하는 내용과 반려동물 행동 지도사를 국가 자격으로 신설해 반려동물의 행동 분석과 훈련을 위한 전문 인력이 양성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추가됐다.

동물보호법이 제정 31년 만에 전부 개정되면서, 동물에 대해 달라진 인식을 대거 반영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동물을 전보다 강하게 보호하고, 그동안 규율하지 못했던 부분을 보완해줄 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가족인데 '물건'

다만 '펫 휴머니제이션'이 일찍이 진행된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후진적인 측면이 많다. 문화발전의 단계에서는 '동물의 인격화'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관련 법안은 문화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행 민법상 동물이 여전히 '물건'으로 취급받는 것이 대표적이다.

현행 민법 제98조는 물건을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동물은 이 중 유체물에 해당해 물건으로 취급된다. 민법상 동물은 권리의 주체가 아닌 객체다. 형법에서도 동물은 재산죄의 보호 대상이 되는 '재물' 범위에 속한다.


'동물도 생명'이라는 통념에 부합하지 않는 이 같은 법은 실생활에서 각종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현행법상, 동물을 상해 또는 살해한 경우에도 일반적 물건과 다른 특수한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 동물의 가격을 넘는 초과 부분을 배상하지 않아도 되고, 동물 보호자가 위자료를 청구할 수도 없다. 다만 최근 판례들은 동물 가격보다 높은 치료비를 지출할 경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손해 배상액을 산정하기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동물은 경매 등 강제 집행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이혼할 경우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이혼할 경우 당사자 간에는 자녀 양육에 준하는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지만, 실제로는 깊게 고려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동물의 법적 지위를 신설하는 민법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활발하게 논의되지는 않아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태다.
'펫심' 겨냥한 정치권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약이 나오기도 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총선 동물복지 공약으로 '동물복지기본법'을 제정해 동물의 지위를 생명체로 존중하고, 민법을 개정해 동물이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존중받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1500만 반려가족의 '펫심'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의 동물복지 공약은 반려동물뿐 아니라 동물원과 농장 동물 등 동물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주요 추진 과제 중에서도 가장 첫 번째로 열거된 것이 바로 "동물의 지위를 생명체로 존중한다"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동물 학대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동물 학대자에게서 피학대 동물을 몰수하고, 동물 소유권과 제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난해 동물기본법이 전부 개정될 당시 '동물 학대 행위자의 동물 사육금지 제도'가 빠진 것이 미흡했다는 평가가 나온 가운데, 이를 반영한 흐름으로 풀이된다.

반려동물을 좁은 공간에 가두고 반복적으로 임신 출산시켜 새끼를 얻는 '생산공장' 및 가짜 동물보호소를 금지하는 공약도 있었다. 이를 위해 시설별로 사육하는 동물의 마릿수를 제한하고, 시설에서 준수해야 하는 동물관리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동물 복지와 관련해서는 이 밖에도 △반려동물 출생에서 사망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 구축 △취약계층 반려동물 의료 서비스 확대 △개 식용 종식 절차 이행 지원 등이 제시됐다.
시장 '폭풍 성장'하는데 제도는 '걸음마'

앞으로는 동물을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급속 성장하는 반려동물 관련 산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안의 입법 움직임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식약처는 오는 2027년 반려동물 연관 산업 규모가 6조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22년 4조원대로 추산되는데 5년 만에 50%, 연간 10% 정도의 성장세가 예상되는 셈이다. 그러나 급성장하는 시장과 달리 법과 제도는 이제야 시작하는 정도다. 이에 관련 법·제도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는 오히려 지난 수년간 떨어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우선 '펫 푸드' 시장을 관리하는 사료관리법은 지난해 3월 공포 및 일부 개정됐다. 사료 안전성 인식을 제고해 펫 푸드 산업을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반려동물이 먹는 사료에 대한 안정성 관리 강화가 요구되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펫 보험'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면서 펫 헬스케어 관련 산업을 뒷받침할 법안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펫 보험 계약 규모는 전년보다 50% 넘게 성장한 10만9088건으로 집계됐다. 다만 동물 표준 진료 코드가 없고 동물진료기록부 발급이 의무화되지 않는 등 제도적 기반이 미흡해 가입률은 1.4%에 그친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반려동물 진료비 지출 부담을 줄이고 펫 보험을 활성화하기 위해, 동물병원의 진료기록부 발급을 의무화하고 다양한 보험 상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수의사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 외에도 반려동물 규제 샌드박스를 운영해 문화와 맞지 않는 각종 반려동물 관련 규제를 우선 풀기도 했다. 규제샌드박스란 사업자가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일정 조건(기간·장소·규모 제한)하에서 시장에 우선 출시해 시험·검증할 수 있도록 현행 규제의 전부나 일부를 적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식당에서 '겸상'을 가능하게 하는 '반려동물 음식점 동반 출입'이 대표적이다. 현행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상 식품접객업소에서는 동물의 출입이 금지되지만,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영업장 출입구에 동물 출입 안내문 등을 게시해 영업자와 소비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동물보호법상 이동식 장례 시설을 통해 '동물장묘업' 등록이 불가하지만, 반려동물 집을 방문해 염습 및 추모 후 사체를 차량으로 옮겨 장례를 진행하는 장례 서비스도 규제 샌드박스에 해당한다. 복부 정맥 패턴을 인식해 반려동물을 특정하는 새로운 반려동물 등록 신기술과 '사료관리법'에 반하는 반려동물 사료 즉석조리 판매 등도 실증 특례를 받은 사례다.

반려동물 관련 산업을 전반적으로 지원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반려동물 관련 산업법'을 제정에 대한 논의도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7년 '반려동물관련산업법 제정을 위한 기반 마련 연구'를 진행했던 김현희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려동물 관련 시장 규모의 확대에 따라 관련 업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야생동물이나 가축과 구별되는 반려동물과 관련한 산업 전반에 대한 법적 규율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한경닷컴과 통화에서 반려동물 관련 산업을 판매 및 유통업, 사료 및 용품, 서비스업(미용, 훈련, 전시업, 보험, 장례) 등으로 세분화하고 개별 영역별로 필요한 사항을 규정해 "다양한 영업에 대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산업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고서 발간 이후 지난 7년 동안)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지만, 관련 산업을 법으로 만들어 육성하자는 논의는 본격화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동물을 학대하거나 폭행하지 않도록 하는 '규제법'은 동물보호법이 모든 사항을 뭉뚱그려서 하고 있지만, 이는 산업을 육성하고, 동물 용품이나 식품의 수출입을 돕도록 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만 '생소한 규제'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국내에서는 쟁점이 되는 '동물 학대 행위자의 동물 사육금지 제도'가 각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영국, 독일, 아일랜드, 스위스, 미국 등에서 동물 학대범의 동물 소유를 금지하고 있다.

1922년 세계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제정한 영국은 제33조에 동물 학대범의 동물 소유를 금지하도록 정하고 있고, 독일은 동물 학대로 유죄 판결은 받은 학대 행위자는 동물 사육이 금지될 뿐 아니라 관련 직종 취업도 제한된다. 미국 역시 학대 행위자의 소유권을 박탈하고, 2016년부터는 동물 학대를 강력 범죄로 취급하고 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조항도 상황이 비슷하다. 세계 최초로 동물의 법적 지위를 신설한 국가는 오스트리아로, 오스트리아는 1988년 이러한 조항을 도입했다. 이어 독일(1990년), 스위스(2002년), 네덜란드(2011년), 체코(2012년), 벨기에(2020년), 스페인(2021년) 등이 민법을 개정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동물 보호'와 관련해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규제를 하는 국가도 드물지 않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사람이 개를 개집이나 나무 울타리 등 고정된 물체를 묶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스위스는 반려견이 '목줄 없이' 원하는 만큼 운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은 모든 견주가 책임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반려동물의 예방 접종과 건강검진을 의무로 규정했다. 스웨덴은 최대 6시간마다 반려동물을 산책시키도록 하고 있다.

한 동물권 관계자는 "그동안 키우고자 하는 욕망만 강했고 그에 비해 환경은 턱없이 부족했다"면서 "변화하는 시민 의식에 부합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기 위해 국회에서도 이전보다 훨씬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선진국 사례를 많이 참고하며 동물권에도 많은 도움을 구하는 분위기다. 동물과 관련해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도 거의 없고, 표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탓에 한번 논의가 되면 법안 통과도 수월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향후 정치권을 비롯해 사회적 논의가 더 활발해질 가능성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최근 개 식용 금지법 사례와 같이, 변화는 기존 문화나 한 시장의 후퇴를 수반한다. 아무리 그 수가 적고 후진적인 부분을 수정하는 일이라도 충돌이 불가피하다. 그런 부분을 조율하는 일이 사회적 숙제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슬기/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한경닷컴 심층기획 '슬기로운 반려생활' 총 7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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