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행복했던 1155일의 기록…'푸'린세스 다이어리

입력 2024-03-07 18:06   수정 2024-03-14 16:55



푸바오는 ‘행복을 주는 보물’이란 뜻이다. 2020년 7월 20일. 사랑(엄마 아이바오)과 기쁨(아빠 러바오) 사이에서 태어난 자이언트 판다. 길이 16.5㎝, 몸무게 197g으로 어른 손바닥에 올라갈 만큼 작은 몸으로 태어난 이 곰 한 마리는 역사상 유례없는 ‘동물 신드롬’의 주인공이 됐다. 그 작던 몸집이 100㎏에 달하며 무럭무럭 자라날수록 사람들의 행복도 함께 커졌다. 이름 그대로 거대한 행복을 수많은 이에게 선물했다.

그런 푸바오가 떠난다. 앞으로 약 한 달간의 검역과 적응 훈련을 거쳐 중국 쓰촨성 청두행 비행기에 오른다. 일반 공개를 공식 종료한 지난 주말은 1155일간 푸바오에게 열광한 일명 ‘푸덕이’(푸바오 덕후)들에게 애달픈 작별의 시간이었다. 한 번이라도 푸바오를 직접 본 550만 명의 사람, SNS와 유튜브 영상으로 일상을 함께한 수십만 명의 팬까지. 예고된 이별이어서 더 슬펐다는 이들, 걱정돼 잠도 안 온다는 이들, 이제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는 이들까지 ‘푸바오 로스’에 시달리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누군가는 묻는다. “왜 곰 한 마리에 이 난리들이냐”고. 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다. “곰이어서 그렇다”고. 그렇다. 적어도 푸바오는 애쓰지 않았다. 더 나아 보이려고, 더 잘해보겠다고, 그래서 누군가를 굳이 이겨보겠다고 다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도시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우리에게 푸바오 가족의 천진한 모습은 잊고 있던 마음 깊은 곳의 낭만과 본능을 서서히 끄집어내게 했다. 아낌없이 자고, 느릿느릿 움직이고 잘 먹는 일. 무엇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삶의 진정한 의미 말이다.

그런 푸바오를 보며 우리도 배웠다. 만지거나 가까이 갈 수 없어도 그저 지켜보는 새로운 차원의 동물 사랑을, 두 마리의 판다가 다섯 마리의 가족이 돼가는 생명의 감동을, 18개월 만에 부모 곁을 떠나 씩씩하게 홀로 서는 자연의 섭리까지. 푸바오와 가족, 이들 곁을 지킨 사육사들이 남긴 것을 돌아본다.
"쉿! 푸바오 자는 시간이에요"…50여년 동물원 에티켓 바꿨네
푸바오 신드롬…잠시 잊고 살았던 것들을 깨우다
판다 습성·생태계 '열공'
"철창 속 구경거리 아냐"
고요한 사육장 숨죽이며 봐

몰랐던 사육사의 일상
"육아는 똑같구나" 공감
가족이 주는 행복 깨달아


용인 푸씨 푸바오. 앞구르기만 해도 500만 뷰, 물만 마셔도 300만 뷰. X 위에 굴러도 그저 미소. 이게 다가 아니다. 일명 ‘푸덕이’(푸바오 덕후)라고 불리는 푸바오의 팬덤은 월드스타급이다. 푸바오의 생일엔 서울과 경기 지하철역 곳곳에 축하 광고가 올라왔고, 에버랜드 유튜브 채널 조회수는 5억 회를 넘었다. 하루 약 8000명이 전국에서 몰려든 푸바오의 마지막 1주일. 현장의 열기를 확인하러 판다월드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너무나도 놀랐다. 판다 사육장 안은 마치 아무도 없는 듯 고요했다. 카메라는 무음 모드, 발걸음은 살금살금, 옆 사람과의 대화는 속닥속닥 귓속말 수준. 대체 푸바오는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①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다

푸바오와 동생들이 번갈아 나오는 사육장이 원래 그랬던 건 아니다. 매일 수천 명의 관람객이 모여 환호성과 아이들 비명,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반전의 시작은 지난해 8월. 아빠의 목마를 탄 아이가 판다 우리 안으로 장난감을 떨어뜨려 푸바오의 아빠 판다 러바오가 이를 깨무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소리에 민감한 푸바오와 푸바오 가족들은 놀란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반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철창 속 구경거리가 아니라 생명으로서 존중하자”는 말들이 번져 나갔다. 팬들은 판다의 습성을 스스로 공부하고 공유하며 ‘푸바오 관람 매너 운동’에 나섰다. 그때부터 숨죽여 지켜보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이전까지 동물원에 대한 인식은 ‘신기한 구경거리’ 또는 ‘우리에 갇힌 불쌍한 생명’ 정도였던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 동물원의 역사와 관람 문화가 푸바오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됐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②잊고 있던 삶의 본질을 깨닫다

푸바오가 태어난 해는 2020년. 사회적으론 코로나19 팬데믹 확산으로 암흑과 같은 시간을 보낼 때였다. 세계적 멸종 취약종인 자이언트 판다. 한국에서 최초로 자연번식 판다가 탄생한 순간은 그 자체로 이슈가 됐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보러올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이때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이끈 건 에버랜드 사육사들. 푸바오의 일상을 영상에 담아 유튜브 채널 등으로 상세히 실어 날랐다.

요즘 세대의 육아와 다르지 않고,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사육사의 세계’를 손안에서 만나며 사람들도 눈을 떴다.

③ 소통과 행복의 의미를 되찾다

모든 문화현상이 개인화된 시대에 진정한 소통과 행복의 의미를 전한 측면도 있다. 푸바오 사랑엔 세대 간의 벽도, 성별과 국경도 없었다. 흉흉하고 시끄러운 세상의 뉴스들을 비집고 오직 푸바오와 가족들은 평온하고, 자신만의 속도로 움직이며, 나날이 귀여움을 발산했다. 에버랜드 판다월드의 주 방문객은 20~40대 여성. 60~70대의 팬덤도 강력했다. 영유아와 10대는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한 생명체를 두고 전 연령대가 함께 대화하고 열광한 적이 또 있었을까. 푸바오의 어미 아이바오가 한 달 내내 같은 자세로 새끼를 돌보거나 미성숙한 새끼 판다를 품는 과정을 지켜보며 한 번쯤 나의 부모와 가족을 떠올리진 않았을까.
韓·中 관계 녹인 '판다 대사'…"한국팬 위해 푸바오 일상 중계"
에버랜드, 中 국영방송 CCTV와 협약
판다는 ‘야생에서 온 대사’라고 불린다. 멸종위기 동물인 판다를 본 사람들에게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로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환경보호를 알리는 홍보대사뿐 아니라 외교 대사 역할을 수행한다. 동글동글 귀여운 모습으로 국가 간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푸바오도 냉랭해진 한·중 관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지난 1월 23일 중국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푸바오가 어디에 머물든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받을 것”이라며 “푸바오는 태어난 이후 한국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고 중국과 한국 사람의 우호적인 감정을 증진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푸바오는 지난 3일 마지막으로 관람객을 만났다. 한 달간 판다월드 내에서 건강 관리를 받으며 이송 적응 훈련을 포함한 검역 절차를 거칠 예정이다. 4월 3일 강철원 사육사와 함께 중국 쓰촨 판다보호구역센터로 향한다. 이후 푸바오가 어디로 갈지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평생 한국에서 지낸 푸바오가 혼자 새로운 곳에서 외롭지는 않을까. 전문가들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독립생활이 판다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에버랜드 사육사들은 1년에 한 번씩 중국에서 열리는 판다 콘퍼런스를 찾아 푸바오를 만날 예정이라고.

그래도 푸바오가 떠나 걱정되고 허전한 한국 팬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 푸바오가 중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어서다. 에버랜드는 중국 국영방송 CCTV와 업무협약(MOU)을 맺었고, ‘iPanda’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푸바오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협의 중이다. 푸바오가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만큼 조만간 사계절 ‘죽순 먹방’을 기대해도 좋겠다.
한파 속 5시간 줄 선 '푸친자들'…"널 보러 용인으로 이사왔어"
to. 푸바오에게…관람객들이 남긴 마지막 편지
70대 할머니부터
30대 직장인까지
캠핑용 의자 들고 대기

"푸바오, 너의 성장 보며
위로와 행복을 얻고
살아갈 힘을 얻었단다"


“자는 모습 보려고 4시간 기다렸어요.”

“푸바오 매일 보려고 대전에서 용인으로 이사했어요.”

푸바오를 볼 수 있는 마지막 1주일. 지난주 경기 용인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같이 각자의 사연을 꺼내놓았다. 평일 낮에도 예상 대기 시간은 5시간 반. 하루 7500명의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캠핑용 의자와 간식이 든 배낭을 멘 채 판다월드 주변을 빙빙 돌아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당분간 ‘푸바오 로스’에 시달릴 ‘푸덕이’(푸바오 덕후들)들의 현장 인터뷰를 바탕으로 푸바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기사로 재구성했다.

70대 할머니 김푸덕 “좋은 어른이 되기로 했단다”

내가 낳은 자식도 아닌 네가 떠난다는 소식이 왜 이렇게 슬픈 걸까. 네가 태어나는 영상을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나. 30년 전 내 모습이 떠오르더구나. 네 엄마 아이바오가 너를 안고 보듬어주는 모습이 경이로웠어.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는 건지. 산통에 힘들어하면서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손바닥만 한 너를 낳고 정성스레 핥아주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더구나.

그렇게 애지중지 너를 낳아서 키워줬는데 금방 엄마한테 덤비고 까부는 네 모습까지, 꼭 우리 아들 같았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네 아빠와 똑같이 행동하는 것도 신기해. 의자에 기대 밥도 먹고, 심심하면 앞구르기도 하고. 누가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자기 아빠를 꼭 닮은 게 마치 우리 집 식구들을 보는 것 같아. 네가 커가는 과정을 볼 때마다 이제 품을 떠난 아들과 딸이 떠올라 더 사랑스러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강바오 송바오 사육사 할아버지들 곁을 떠나 중국으로 돌아간다니 걱정이 앞선다. 곧 엄마가 될 거라고 하니까 더 마음이 허전해. 차라리 남자 아이였으면 마음이 놓였을까. 외딴곳에 가서 임신과 출산을 해야 한다니, 아직도 어린애 같은 우리 딸 시집보낼 때가 생각나. 판다는 건강하다면 30년은 산다고 하니까 앞으로 20년 넘는 세월이 남았겠구나. 어쩌면 네가 나보다 오래 살 수도 있겠다.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오겠지. 그날까지 (지금처럼) 밥 잘 챙겨 먹어.
30대 남성 직장인 강푸덕 “난 살아갈 힘을 얻었어”

나는 네가 부러워. 하루 종일 먹고, 자고, 싸고. 심심하면 좀 뒹굴뒹굴 구르기도 하고. 나도 너처럼 누워서 먹고 자는 삶을 살고 싶어.

신기한 건 그렇다고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네가 사람 말을 알아들을 리 없지만, 사육사 할아버지들이 말 걸면 대답도 하고, 놀아달라고 막 다리를 붙잡기도 하고. 느긋하기만 한 네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궁금해.

부러운 건 사람들이 그런 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예뻐해준다는 거야.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갔어. 귀엽기는 한데, 그 정도로 좋아할 일인가 싶었거든. 그런데 어느샌가 나도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네 영상들을 찾아보게 되더라. 퇴근길 수많은 사람 사이에 끼어서 담배 냄새, 음식 냄새, 땀 냄새에 숨이 막힐 것 같다가도 너를 보면 조금 숨통이 트였어. 하루 종일 일에 파묻히고, 사람들에게 치이면서 발칵 뒤집혔던 마음이 아무 걱정 없이 뒹굴거리는 널 보니 차분히 가라앉는 날도 많았거든. 누군가를 조건과 편견 없이, 아무 계산도 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얻었지.

결국 너를 한 번도 못 보고 떠나보내게 됐네. 언젠가 한 번 가봐야지 하면서 미뤘는데, 평일 내내 일하다가 주말에 에버랜드까지 가는 일이 쉽지는 않더라고. 하지만 네 동생들은 꼭 보러 갈게.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네 덕분에 지난 1년 동안 많이 웃었어. 너는 아마 그런 생각 안 했겠지만, 네가 있어 우리들의 일상이 조금은 더 밝아졌을 거야. 부디, 건강하렴. 고마웠어.
"푸바오는 오래 간직될 가족"…눈물 쏟은 '강바오' 할부지
'푸버지' 강철원 사육사 작별 인사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의 일반 공개 마지막 날이던 지난 3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 판다월드를 찾아 푸바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던 관람객들은 곳곳에서 눈물을 훔쳤다. 판다월드 관람이 끝나고 해가 진 이후에도 안타까움을 달래지 못해 한참을 더 머물렀다.

이때 관람객들을 배웅하기 위해 ‘푸바오 할아버지’ 강철원 사육사(사진)가 나타났다. 37년간 에버랜드 주토피아에서 근무한 베테랑 사육사도 푸바오와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이들 앞에서 여러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 보였다. 강 사육사는 눈물을 흘리는 관람객들에게 “그만 울고 집으로 돌아가라”며 “우리 푸바오 잘 갈 수 있도록 잘 관리하고 돌볼 거예요. 제가 소식 전할 거니까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는 “저도 오늘 루이, 후이한테 말했어요. 아이고, 너희들이 있어서 천만다행이다…”라며 울먹인 뒤 얼굴을 가리고 애써 눈물을 참는 모습을 보였다. 손으로 눈가를 훔친 강 사육사는 목멘 소리로 “그만 울고 돌아가시라, 다음에 또 만나자”며 두손을 흔들고 관람객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강 사육사는 연신 눈물을 닦으며 방사장 쪽으로 향했다. 강 사육사는 푸바오가 태어나기 전 엄마 아이바오와 아빠 러바오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푸바오가 태어나는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평소 “푸바오는 가슴에 오래 간직될 진짜 가족 같은 아이”라고도 했다. 같은 날 ‘푸바오의 작은 할아버지’로 불리는 송영관 사육사도 관람객들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가족이 성장하고 멀리 떠난다고 잊혀지는 건 아니잖아요. 푸바오 인생의 3.5년을 함께했지만 35년 동안 남을 좋은 추억을 우리에게 새겨줬다고 생각해요.”

용인=김보라 기자/구교범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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