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병행하면서 놀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하는 여성 10명 중 6명이 ‘자녀를 낳을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높은 비율도 충격이었지만 예상 밖의 이유를 듣곤 더욱 놀랐다. ‘육아에 구속되기 싫다’거나 ‘자아실현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가 ‘경제적 부담 때문’이라는 답변만큼 많았다.
저출산 시대에 여전히 출산과 양육 인프라가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도 놀라움이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최모씨(35)는 “만 1세 안팎의 아이는 돌보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어린이집도 꺼린다”며 “찾다 찾다 결국 양가 부모님에게 ‘뺑뺑이’를 돌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7살 딸을 키우는 김모 변호사(38)는 “전업맘처럼 돌봐주지 못해 딸을 볼 때마다 미안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홍콩, 싱가포르 등의 워킹맘은 저출산 대책을 고민하는 당국자들의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얘기도 들려줬다. ‘필리핀 헬퍼’(가사도우미)가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월급이 한화로 80만원 정도인데 아이 돌봄과 집안일을 풀타임으로 처리해 준다고 한다. “외국인 돌봄 인력에게 최저임금제도를 예외·차등 적용하자”는 내용의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도 현행 돌봄 비용이 과도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한국의 저출산 현상은 오랜 기간 관행으로 이어져 온 가부장적 문화와 승자독식의 경쟁 구조, 경제 성장률 둔화, 여성의 사회적 진출 확대 등이 맞물리면서 나타나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단순히 예산만 쏟아부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 정부와 정치권은 선심성 퍼주기 정책에만 골몰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출산과 육아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도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여성이 맘 놓고 일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의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이게 ‘딸 바보 아빠’의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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