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괴롭힘…"누가 봐도 뻔한 허위신고는 없다"

입력 2024-03-12 16:30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사업주가 신고 직원을 허위신고를 이유로 해고했다가 그 해고가 무효로 판단된 사안을 소개한다(대상 판결. 1심 2020가합56617, 2심 2020가합56617).

팀원 J(Junior)는 노래방에서 과장 S(Senior)가 여러 차례 손을 잡아 쥐고 끌어당겼다고 신고했고, 곧이어 S를 강제추행으로 형사고소까지 했다. 신고 및 고소 취지는 ①S가 자신의 손을 잡아 쥐고 노래를 했고 ②노래방을 나갔는데 S가 다시 손을 잡아끌어 안으로 들어갔고 ③재차 뿌리치고 앉아 있을 때 다시 다가와 손을 잡아끌어 노래를 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고 후 전개되는 상황은 J의 예상과 완전히 반대였다. 사업주가 J를 해고한 것이다. S가 불이익을 받게 할 목적으로 J가 허위신고를 했다는 이유였다.

대상 판결에 나타난 사실관계를 보면, 실제 J의 신고는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우선 J는 사안을 직장 내 성희롱이라고 판단함에 있어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사정이라 할만한 신고 내용(②노래방 안으로 손을 잡아끌었다)를 착각이었다며 철회했다. 당시 노래방 상황을 촬영한 CCTV 영상을 보면, 나머지 신고 사실도 영상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예컨대, 당시 노래방에서는 S와 J 사이에 여러차례 신체 접촉은 있었지만, S가 J 손을 잡아 쥐고 노래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S는 J 신고를 강력히 부인하면서, J가 인사 청탁을 했다가 거절당하자 허위로 신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고 이후 일어난 일이지만, S는 형사고소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기까지 했다.

하지만 대상 판결에서 법원 판단은 사업주 판단과 달랐다. 법원도 J의 신고가 일부 명확하지 않는 점은 인정했지만, J의 신고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현저하게 부당한 신고가 아니므로 허위신고는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 근거로는 ①CCTV 영상에서 S와 J의 신체접촉이 일부 확인되는 점 ②신고 내용 중 CCTV 영상과 다른 부분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을 겪어 당황하였던 J가 약 3주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신고를 하면서 착오한 것인데 이를 이유로 J의 신고가 허위라거나 S를 처벌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③당시 노래방에 같이 있던 직원들의 진술("S가 J에게 어깨동무를 하기에 떼어놓았다", "사건 당일 S가 자신의 손을 잡았다는 얘기를 하며 J가 짜증을 냈다") 등을 들었다.

기업 실무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 또는 괴롭힘 신고가 허위 또는 과장되었거나, 사적인 목적을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할만한 경우를 종종 본다. 이 사안도 J의 사업주에게는 그 범주에 들어가는 사안이었을 것이다.

대상 판결은 그런 상황을 맞닥뜨린 기업이 그 신고를 허위신고라고 판단할 때 적용할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대상 판결을 그대로 인용하면, "당시 이루어진 신체접촉이 객관적으로 성추행 또는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전적으로 구애받을 것이 아니라", "신고한 것이 신고 및 징계 제도 취지 등에 비추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현저하게 부당한 것인지 여부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업은 대상 판결이 '도저히', '현저하게'라는 아주 엄격한 기준을 채택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도저히'와 '현저히'는 대법원이 고정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이 법리상 인정되더라도 그 금액까지 포함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사용자의 추가 법정수당 지급의무를 인정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할 때 쓴 용어다.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추어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다. 이와 같은 경우 근로자 측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되어 받아들일 수 없음이 분명하다”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그리고 대법원은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도 했다(대법원 2019. 2. 14. 선고 2015다217287 판결). 대상 판결은 어떤 신고를 허위신고로 판단하려면 그 전에 기업이 '신중하고 엄격하게' 사실관계를 조사해야 한다고 명하는 것이다.

이는 허위신고를 하려는 직원이 그 직후 처할 상황을 돌아보면 당연하다. 허위신고자는 주변 정황을 치밀하게 사전 계획하고 조작, 통제해야 한다. 예컨대, 위 사안이라면 J는 노래방에 있던 직원 중 나중에 자기를 위해 유리한 진술을 할 직원을 정확히 고르고, 실감나게 짜증을 연기해야 한다. 그 동료가 J의 짜증이 진정성이 있다고 믿도록 해야 한다. 예상되는 가해자로 지목된 S의 강력한 반발과 보복 위험을 끝까지 버텨 처음의 거짓된 입장을 고수할 각오도 해야 한다. 물론 이런 난관 하에서도 허위신고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매우 이례적인 경우일 것이다.

정리해 보자. 앞서 본 대상 판결의 판단 기준은 향후 허위신고 뿐만 아니라 과장 신고, 사익 신고 등 부적절한 신고 전반에 계속 적용될만한 원칙이다. 기업은 이를 유념하고, 어떤 신고가 그 의도와 신빙성이 의심스러워도 신중하고 엄격하게 허위신고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신고인에 대한 편견은 없는지, 일부 신고인의 신고상 결함은 시간 경과나 정신적 충격에 기인한 것이 아닌지, 피신고인 변명은 구체적인 근거가 있는지, 모든 관련 사실을 파악하여 적절히 고려한 것인지 하나하나 살펴야 한다.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의 폐해에 대한 인식이 강화된 환경 하에서 신고가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부적절한 신고 또한 늘고 있다. 부적절한 신고가 야기하는 문제는 사실 심각하다. 무엇보다 동료 직원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것으로서 그 자체로 정의롭지 않다. 냉소적 기업 문화를 조장하고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 신뢰를 해한다.

기업은 부적절한 신고가 없는 업무 환경을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의지와 현명한 대처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만약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정성을 잃고 감정적으로 부적절한 신고에 대응하게 되면, 그것은 인사 운영에 더 큰 어려움을 부른다.

다음으로, 대상판결은 허위신고 논란이 제기되는 등 심각한 직장 내 성희롱 또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라면 특히 절차적 정당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또 다른 당연한 가르침을 준다.

소개한 사안에서는 사업주와 J간 대립이 격화되어 감독 당국이 사업주의 신고에 대한 조치가 적정한지 조사하게 되었다. 이 때 감독 당국은 사업주의 조사 절차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피해자 지원을 위한 외부전문가를 참여시키지 않은 채 사업주측 직원으로만 조사위원회를 구성한 잘못 △조사위원들이 CCTV 영상을 미리 확인하였음에도 위 영상의 존재 사실을 J에 고지하지 않은 채 조사를 진행하고, 영상을 보지 못한 J의 진술이 CCTV 영상과 일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명확한 증거도 없이 J 신고를 허위 신고로 판단한 잘못 △S와 J의 진술이 모순됨에도 조사위원회가 참고인 등을 충분히 조사하지 않고 허위 신고로 단정한 잘못 △가해자로 지목된 S가 징계위원회 간사로 J의 징계절차에 관여하면서 J에 대한 신분상 처분을 비롯한 관련 문서에 결재한 잘못 등이 있다는 것이다. 대상판결은 위 지적을 인용하면서, J의 해고는 “그 징계양정의 적정 여부를 떠나 절차적 정당성 측면에서도 심히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모든 직장 내 성희롱이나 괴롭힘 조사에서 위에 열거된 사항을 전부 챙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이 잘못을 전부 시인하거나, 부인하더라도 신고 사실을 입증할 아주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경우라면,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조사위원회가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이 이 사안에서와 같이 신고인에 대한 불이익 처우에 관여하거나 그러한 오해를 받을만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금기다. 그리고 이 사안에서와 같이 허위신고 논란이 있는 특수한 상황이라면, 기업은 통상적인 조사나 징계절차와 달리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감독 당국이 지적했듯이 조사위원회 구성상 외부 전문가를 참여하도록 하거나, 본인 진술에 반하는 증거를 사전에 공개하여 충분히 반박의 여지를 주는 조치 등이 있어야 했다. 설령 내부 규정상 그런 조치가 정해져 있지 않았어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절차 공정성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과 유연한 대처 자세가 겸해질 때 기업은 불필요한 분쟁 발생과 확대를 막고 일하기 좋은 업무 환경을 이루는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될 것이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조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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