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클래식 흐르는 헬싱키, '지휘계 아이돌' 메켈레 키웠다

입력 2024-03-11 18:43   수정 2024-03-19 16:33


지난달 말 한국경제신문이 찾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평일 퇴근 시간인데도 한산했다. 원체 인구 밀도가 낮은 데다 궂은 날씨 때문에 번화가인 헬싱키 중앙철도역 인근조차 사람들이 딱히 몰리지 않았다. 딱 한 곳, 공연장 ‘헬싱키 뮤직센터(Musiikkitalo)’는 예외였다. 헬싱키 명소로 꼽히는 뮤직센터 로비에는 오후 5시부터 콘서트를 보러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공연장 관계자 카롤리나 피카렌 씨는 “매일 최소 2개 이상의 공연이 열리고, 대부분 좌석이 찬다”며 “사람들이 오후에 공연장을 찾는 건 이곳에서 자연스러운 일상”이라고 설명했다.
전 국민 대상 체계적 예술교육
세계적인 지휘자도, 훌륭한 오케스트라도 관객 없이는 무용지물. 핀란드에는 무엇보다 문화·예술적 소양이 높은 국민이 있다. 역사적으로 20세기 초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면서 전략적으로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조했고, 이로 인해 정부 차원에서 예술 교육을 체계화한 영향이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여러 지역 오케스트라 상당수가 예술 애호가나 민간에서 시작됐다는 점도 그만큼 예술에 대한 국민적 애정이 컸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핀란드에는 1960~1970년대부터 수십 년간 틀을 갖춰나간 ‘예술기본교육(BEA)’이 있다. 예술기본교육은 희망자에 한해 학교 교과수업 외에 실기 중심의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공교육의 일부다. 정부 차원에서 ‘전 국민 악기 연주하기’를 목표로 한 셈.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지원 아래 학생들은 강습료의 20% 미만만 지급하면 전문가들로부터 직접 실기 중심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처음엔 음악부터 시작해 현재는 미술, 건축, 무용 등 아홉 가지 분야에서 가능하다. 한국의 방과 후 예술학교와 비슷하지만 훨씬 체계적이다. 핀란드기초교육협회에 따르면 핀란드에는 BEA를 제공하는 부속 교육 기관만 전국 220여 개에 이르고, 전국 80% 이상의 지자체가 이를 운영한다. 정부 차원에서 커리큘럼을 만들고 교육 품질을 관리한다. 이렇듯 핀란드에서 예술은 ‘럭셔리’가 아니라 ‘공공재’다. 예술에 대한 접근은 모든 어린이·청소년이 응당 가져야 할 권리로 여겨진다.
수많은 지휘명장 배출
헬싱키 뮤직센터 안쪽으로 들어가면 시벨리우스 아카데미가 있다. 이 아카데미는 대학 수준의 음악 학교로 수많은 지휘 명장을 배출해낸 명문이다. 핀란드 음악을 논할 때 지휘를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1세대 지휘자 요르마 파눌라(96)는 1973년 이곳에서 전문 지휘자를 양성하는 교육 커리큘럼을 체계화했다. 당시에는 지휘자를 학교에서 별도로 교육하는 시스템이 거의 없었다. 주로 오페라 극장 등에서 반주를 하며 지휘자에게 개별적으로 배움을 이어갔다. 이들 수업이 특별한 이유는 ‘카푸 반디’(지휘 리허설 수업)라 불리는 풍부한 실전 경험이다. 학생들이 톱 오케스트라 지휘를 경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벨리우스 음악원의 지휘 커리큘럼은 학생들에게 핀란드의 프로 오케스트라를 많게는 연 4회 이상 지휘할 기회를 준다. 한국으로 치면 대학원생에게 서울시향을 지휘할 기회를 학교 수업으로 제공하는 셈이다.

지휘과 학과장 카이사 홀로파이넨은 “모든 핀란드의 지역 오케스트라와 강력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며 “(핀란드는)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모든 악단과 학교가 단합해 세계적인 지휘자를 키우는 데 참여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미래의 청중 키운다”

핀란드 교육계와 문화예술계는 예술교육도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시벨리우스 아카데미 교수이자 BBC 심포니 수석지휘자인 사카리 오라모는 “핀란드에서 클래식 음악은 기본 사항이지만 이를 장기적으로 당연시할 수는 없다”며 미래 세대를 문화예술로 이끌기 위한 유인과 제도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민간에서도 이와 관련한 활발한 지원과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핀란드 문화재단이 지원하고 핀란드 어린이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아트테스터’는 손꼽히는 성공 사례다. 2017년 시작한 아트테스터는 8학년 학생들을 연 2회 전국 예술 명소(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극장 등)로 보내는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에게 교통비와 관람비를 제공하며 학생들은 구체적인 피드백을 작성하도록 돼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아이들을 이끌고 시간을 때우려 소풍을 가는 차원이 아니다. 이들의 커리큘럼은 전문 예술가, 학생 및 교사로 구성된 심사위원을 통해 신중하게 만들어진다. 80여 개 예술 단체에서 제작하는 다양한 작품이나 공연이 포함된다. 요나스 케스키넨 아트테스터 운영 매니저는 “프로그램은 다양한 난이도와 장르를 포괄해 체계적으로 구성돼 있다”며 “단지 즐기기만 하는 건 예술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27년까지 예산이 확보된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영구적인 교육의 일부로 자리잡는 것이다. 프로그램에는 매번 6만50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하고 있으며 누적 40만 명 이상의 학생이 이를 경험했다.

아트테스터의 가장 큰 목표는 예술의 보편적인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와 함께 아이들의 리뷰를 기반으로 ‘미래의 청중이 원하는 문화예술을 종사자들에게 전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주요 목표다. 케스키넨 매니저는 “학생들에게 경험을 선사해 (예술에) 친숙하게 다가가도록 하고, 이들의 리뷰를 데이터화해 미래의 청중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문화 인프라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헬싱키=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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