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남의 일도 내 일처럼 해라

입력 2024-03-12 17:44   수정 2024-03-12 17:45


심부름해도 기분 좋을 때가 있다. 군에서 휴가 나온 날 아버지가 시골 큰댁에 계시는 할머니께 꿀에 잰 인삼을 갖다 드리라고 심부름시켰다. 군에 입대한 뒤로는 처음 가는 길이어서 기분 좋았다. 할머니,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세 분께 인사드리자 여느 때와 달리 더욱 반가워하셨다. 군대에서 잘 지낸다는 얘기를 영웅담처럼 밤이 이슥하도록 혼자 떠들었다.

집에 돌아와 잘 다녀왔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끊임없이 이것저것을 물었다. “할머니 건강은 어떠시더냐? 식사는 잘하시더냐. 음식 씹는 건 어떠시냐. 몇 번 만에 삼키시더냐. 가져간 인삼은 드셨냐. 뭐라 하시더냐. 걷는 거는 어떠시냐. 잠은 잘 주무시더냐. 중간에 몇 번이나 깨시더냐.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모두 건강하시냐?” 쏟아지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한 건 한마디도 없었다.

묻는 말에 답을 제대로 못 하자 질문을 멈춘 아버지는 한심한 놈이라며 역정을 냈다. “심부름하려면 시킨 사람이 간 것처럼 일해야 한다심부름을 핑계 삼아 네 할 일을 하고 다닌 거다라고 질타했다. “사람이 살면서 내 사업을 하지 않는 한 하는 일의 대부분은 남의 일을 맡아 한다. 너처럼 일한 거라면 평균점 이하라고 평가하며 남의 일도 내 일처럼 하라고 주문했다.

아버지는 남의 일이라도 내 일처럼 해야 하는 이유로 다양한 관점을 습득할 좋은 기회라는 점을 가장 먼저 들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더 넓은 시야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물건을 탈 없이 전달한 것만으로는 높은 점수 따기 어렵다. 게다가 심부름 빌미잡아 네 생색내기에 바빴던 건 큰 감점 요인이다라면서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며 책임감을 키우고, 일을 완수했을 때 성취감을 느끼고 자존감 향상에도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게 두 번째 이유라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문제 해결 능력과 협업능력 등을 향상할 좋은 기회가 세 번째 이유라고 강조하면서 남의 일이긴 하지만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네가 한 일로 알고 그걸로 평가할 텐데 소홀히 한 점은 큰 불찰이다라고 강하게 꾸짖었다.

아버지는 전달해야 할 물건이 무엇인지, 왜 전달해야 하는지 등을 파악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중 무엇보다 심부름시킨 사람의 의중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전달할 메시지는 없는지, 뭘 알아와야 하는지에 대해 잘 모르겠으면 직접 물어봤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만약 그런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업무를 지시한 사람이 궁금해할 사항에 대해 충분히 공감해 면밀하게 살펴봤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러자면 맡은 일을 내 일처럼 여기는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한다면서 고사성어를 인용했다.

그날 오랜만에 들은 성어가 심부재언시이불견[心不在焉 視而不見]’이다.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어떤 일을 행하여도 참된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뜻이다. 대학(大學)의 정심장(正心章)편에 실려 있다. “이른바 수신(修身)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달려 있다고 하는 이유는 몸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이것을 일러 수신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마음에 있으면 한식에도 세배를 간다라는 속담을 인용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제대로 성과를 거둘 수 없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자면 남의 일을 내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남을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렇게 마음먹는 일은 공감력에서 나온다며 애써 키워나가기를 당부했다. 공감력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다. 공감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폭넓은 이해심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날 이후 남의 일을 대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쉽게 얻어질 성품은 아니지만, 그 또한 손주들에게도 물려줄 소중한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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