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첨 기쁨도 잠시 '○○아파트 2차'…"이런 황당한 일이" [집코노미]

입력 2024-03-17 06:30  


▶전형진 기자
아파트에 당첨돼서 내집마련에 기뻐한 것도 잠시. 한두 달 뒤에 바로 옆에서, 조금 더 좋은 자리에서 '○○아파트 2차'라며 똑같은 아파트가 분양하는 황당한 경험을 한 분들 계시죠. 이 같은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①원래부터 나눠진 블록이었거나 ②사업자가 두 번에 걸쳐 공고를 내는 경우.


'원래부터 나눠진 블록'이란 의미는 이렇습니다. 얼핏 생각하기엔 내가 분양받은 아파트는 거대한 A1 블록의 한쪽 구석이고, 이제 나머지 영역에서 후속 분양이 이뤄지는 것 같죠.


하지만 둘은 원래 같은 단지가 아니었습니다. 똑같이 제비아파트라고 부르지만 내가 분양받은 건 사실 A2 블록이었고, 이번에 분양하는 건 A1 블록인 셈이죠. 실제로 사업승인도 따로따로 받습니다. 행정적으로는 다른 단지지만 위치가 붙어 있으니까 같은 단지인 것처럼 똑같은 이름을 달아놓은 것뿐이죠.

사업자 입장에선 어떨까요. 어차피 둘 다 내 땅이라면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비교적 상품성이 좋은 단지를 먼저 분양한다면 후속 단지의 경쟁률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상품성이 좋은 단지를 나중에 분양한다면 '지난번보다 좋은 아파트가 나왔다'는 반응을 얻을 수도 있죠. 중요한 건 한 장의 카드가 더 남았다는 사실을 최대한 알리지 않는 것입니다. 소비자들에겐 대안이 생기니까요.

그래서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단지의 옆 땅이 그냥 빈땅인지, 누가 건물을 지으려 하는지 파악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지자체나 지역 개발공사 홈페이지 등에서 사업승인 내역을 조회해볼 수 있습니다. 신도시나 도시개발구역에서 이 같은 사례가 흔하고, 교회의 자투리땅 개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최종파이널디엔드2.pptx'처럼 계속 버전업이 되는 것이죠.


분양을 한꺼번에 우르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같은 이름의 아파트 2~3개 블록이 한번에 나오는 것이죠. 우선 마케팅에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쪼개지면 400가구짜리, 600가구짜리 아파트지만 합쳐서 '1000가구 대단지'로 홍보할 수 있으니까요.


사업장마다 여건이 다르긴 하지만 청약의 구조적인 면에서도 수요를 확 끌어올 수 있습니다. 이미지는 같은 날 청약을 받은 3개 단지의 공고문입니다. 모두 모여 있는 아파트이기 때문에 1, 2, 3블록 분양이 이뤄졌는데요. 잘 보시면 청약 날짜는 같지만 당첨자 발표일은 다릅니다. 같은 단지처럼 분양하는데 당첨자 발표일을 다르게 했다는 건 중복청약을 용인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놓고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 단지에 3번 청약하세요'라고 유인하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청약이 진행되면 모든 블록의 경쟁률에 허수가 생기겠죠. 분양권 전매제한이 자유로운 지역들에선 이 같은 방식으로 투자수요를 유도하곤 합니다. 수분양자가 직접 살든말든 사업자 입장에선 일단 파는 게 중요하니까요. 초기 계약률이 높아야 중도금대출이 실행되고, 그래야 사업자들도 돈을 받아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막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름만 똑같을 뿐 사실은 다른 단지라는 걸 구분해주는 건 입주자모집공고입니다. 모두 따로 공고가 이뤄집니다. 거대한 하나의 단지였다면 관리사무소도 같이 운영하고, 커뮤니티도 크게 운영하겠죠. 하지만 각각의 단지이기 때문에 시설 운영도 따로 합니다. 공고문에도 써있습니다. 작게..


지금까진 ①원래부터 나눠진 블록에서의 분양 방식을 설명드렸습니다. 처음에 언급한 대로 ②사업자가 두세 번에 걸쳐 공고를 내는 경우도 있는데요. 말 그대로 분양을 찔끔찔끔 나눠서 하는 것입니다. 부동산시장 상황이 안 좋을 때 이렇게 분양하죠. 이걸 분할입주자모집이라고 합니다. 주택법에서도 보장하고 있죠.

예컨대 1000가구짜리 아파트를 한꺼번에 분양해서 1000명이 청약한다면 경쟁률은 1대1에 그칩니다. 이 가운데 계약은 더 낮은 비율이죠. 그런데 일단 절반인 500가구만 분양해서 1000명의 청약수요를 끌어온다면 경쟁률은 2대1로 달라집니다. 당첨자들이 느끼는 온도 또한 달라지겠죠. 후속 500가구를 분양할 때도 '선방한 단지'의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아파트뿐 아니라 땅도 마찬가지인데요. LH나 GH가 신도시 등에서 땅을 매각할 때도 입찰이 시원치 않으면 쪼개서 파는 편입니다. A1-1이나 A1-2처럼 나눠진 블록이 대개 이런 경우입니다.


거대한 블록을 만들어 매각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요. 같은 크기이더라도 오히려 A1블록과 A2블록으로 나눈 뒤 이를 묶어서 판매하는 편입니다. 묶음으로 낙찰받은 시행사는 해당 블록에 짓는 아파트를 순차 분양할지, 동시에 분양할지 고민하겠죠.

다소 복잡한 이야기였지만 아파트에 청약하기 전 이 같은 점을 살펴보시고, 가려진 대안들을 잘 검토해보시기 바랍니다. 부동산시장은 정보비대칭성이 굉장히 강하다는 점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기획·진행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촬영 이예주·이문규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편집 이문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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