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作이 名作…60년대생 화가들의 20년전 시선

입력 2024-03-26 18:38   수정 2024-03-27 00:35


“저는 30년 묵힌 걸 꺼냈어요.” (도윤희)

“제 것도 20년은 묵은 거라니까요.” (정주영)

몇십 년의 시간을 거슬러 꺼내놓은 건 보물도, 금도 아닌 ‘내 그림’이다. 세 명의 여성 작가가 작업실에 오랜 세월 정성스레 보관했던 ‘구작(舊作)’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갤러리현대의 올해 첫 전시 ‘에디션 R’을 통해서다.

갤러리현대는 지금 잘 팔리거나 주목받는 작가들의 신작을 선보이는 대신 구작들을 살펴보고 현재로 가져와 ‘부활시키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첫 시리즈는 과거 작품을 되돌아보고(Revisit), 현재의 관점에서 미학적 성취를 재조명해(Reevaluate), 작품의 생명을 과거에서 현재로 부활시키는(Revive) ‘에디션 R’이다. 이를 위해 1960년대생 여성 작가 세 명, 김민정·도윤희·정주영의 작품이 ‘풍경’이란 이름 아래 한자리에 모였다.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 작품 재조명
이 같은 프로젝트는 갤러리현대 개관 54년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하는 프로젝트다.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이 도전을 하는 이유는 작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작품 세계를 살펴볼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풍경’. 김민정, 도윤희, 정주영 세 명의 여성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풍경화를 관객에게 선보인다. 이들은 모두 1960년대생으로 동시대를 산 작가다. 같은 시기 20~30대를 지나며 치열한 매체 실험과 탐구를 해 왔다는 점도 닮았다. 같은 시대, 비슷한 고민을 했지만 작가마다 다른 작업 특성이 드러난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정주영은 ‘정주영표 안료’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한 작가다. 특히 그는 조선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차용해 ‘새로운 풍경화’를 창조하며 자신의 세계를 넓혔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그의 1990년대 후반 작업이다.

김홍도와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속 산봉우리, 능선과 같은 아주 작은 부분을 확대해 그린 신개념 풍경화가 소개됐다. 그는 원작 속 진경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회화로 재해석했다. 정주영의 그림을 보면 원작이 무엇인지 쉽게 맞힐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각자 방식으로 풀어낸 풍경화
1층 벽 하나를 가득 메운 대형 흑백 작품은 도윤희의 2000년대 후반 작업이다. 도윤희는 연필 위주의 작업을 고수해 온 작가다. 연필로 그림을 그린 후 그 위에 바니시를 칠해 말리고 또 위에 연필로 그림을 덧입히는 반복 작업이다. 그가 자신의 작업을 두고 “노동력의 집약체”라고 말했을 정도다. 특히 그는 현재 연필로 그린 흑백 작업에서 180도 달라진 화려한 색채 작업을 내놓는 작가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구작을 선보이는 이번 기회가 더욱 특별하다.

도윤희는 모든 회화에 시적인 제목을 붙인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의 제목도 ‘밤은 낮을 지운다’ ‘천국과 지상의 두 개의 침묵은 이어져 있다’ 등이다.

김민정은 하나의 그림에서 재료를 통해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주선하는 연구를 거듭한 작가다. 한지 위에 먹과 수채 물감을 동시에 사용했다. 수채 물감이라는 안료의 특성상 한지 위에서 먹을 계속 밀어내는데, 두 재료 간 ‘밀고 당기기’를 그의 그림 안에서 관전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작품들이 관객을 만난다. 1991년 이탈리아 유학을 떠나며 그의 작업 인생이 크게 변화한 시기의 그림들이다.

2층 공간에는 김민정의 작업 인생을 뒤집은 터닝포인트가 된 중요한 작품들이 소개됐다. 김민정은 이 작품을 그린 이후부터 ‘불’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한지의 끝부분을 하나씩 손수 태워서 붙였다. 불은 곧 파괴라는 당시 공식에서 벗어나 불로 생명의 개화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전시는 4월 14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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