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8년 뒤 한미약품이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경영권을 둘러싸고 오너가의 ‘남매의 난’이 격화하면서다. 잇단 계약 해지와 분쟁으로 주가는 반토막이 났고 핵심 연구개발(R&D) 인력도 빠져나가고 있다. 이 회사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임 회장은 2016년 1월 개인 주식 90만 주(지분율 4.3%)를 전 직원 2800명에게 무상 증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직원 1인당 받은 주식은 4000만원 규모였다. 한미약품은 취업준비생이 가고 싶은 기업 상위권에 오르내렸다.
투자자들도 ‘텐배거’의 등장에 환호했다. 한미약품은 제약·바이오 투자 열풍을 만든 주역이다. 그러나 2016년 9월 베링거인겔하임이 기술수출 계약을 해지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내부 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판 임직원이 적발되면서 회사 이미지도 악화했다. 당시 압수수색 과정에서 회사를 이끈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대표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며 내부 갈등이 시작됐다는 시각도 있다.
후계 구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창업주의 유산은 분쟁의 시초가 됐다. 임 회장의 배우자인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과 자녀 3명이 상속받은 주식은 1조원 규모다. 상속세로 5400억원을 내야 한다. 송 회장이 2000억원, 세 자녀가 각각 1000억원 이상을 부담하는 구조다.
송 회장은 2021년 은행·증권사로부터 700억원 규모의 주식담보 대출을 받았다. 세 자녀도 1000억원을 대출받았다. 그러나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이자 부담이 커졌고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모녀)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라데팡스파트너스에 일부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하지만 장남 임종윤 사장과 차남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형제)이 외부인의 갑작스러운 등장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라데팡스에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은 주요 출자자인 MG새마을금고가 작년 7월 부실 논란으로 ‘뱅크런’ 사태를 맞으며 무산됐다. 라데팡스는 친분이 있던 OCI그룹을 모녀에게 소개했고 한미사이언스와 OCI 간 통합을 추진했다. 송 회장은 이우현 OCI그룹 회장의 모친 김경자 송암문화재단 이사장과 오랜 기간 가깝게 지내면서 신뢰를 쌓은 관계다.
OCI와 통합은 모녀 주도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배제된 형제가 반발하면서 올초부터 양측의 폭로와 비방전이 격화했다. ‘남매의 난’은 주총 이후에도 장기간 한미약품을 뒤흔들 전망이다. 이 와중에 한미약품에 눈독을 들인 PEF들까지 양측에 러브콜을 보내는 등 갈등은 복잡한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은 창업자가 작고하자마자 유족 간 갈등이 불거졌고, 상속세 해법을 제대로 못 찾은 데다 회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이견도 극복하지 못했다”고 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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