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지방선거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정의개발당(AKP)이 참패했다. 작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 이겨 22년째 집권 중인 ‘21세기 술탄’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탄불과 앙카라를 비롯해 주요 지방자치단체장 자리를 빼앗기며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재선에 성공한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은 강력한 도전자로 떠올랐다. 재정·금융정책 실패가 누적된 탓에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배 요인으로 꼽힌다.
튀르키예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에선 이마모을루 시장이 10%포인트 이상 큰 격차로 재선에 성공하며 야권 주자로서 입지를 굳혔다.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는 2028년 치러질 예정이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2019년 AKP의 비날리 이을드름 전 총리를 꺾고 당선돼 대중교통 요금을 내리고, 영양실조 방지를 위한 ‘국민 우유’ 프로젝트를 펼쳐 인기를 끌었다.
수도 앙카라에서도 야당이 승리했다. CHP 소속 만수르 야바스 앙카라 현 시장은 60.4% 득표율로 AKP 후보(31.7%)를 압도하고 승리를 선언했다. 집권당 AKP는 이스탄불, 앙카라를 포함해 5대 도시에서 패배한 것을 포함해 81개 광역단체 중 24곳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CHP는 35곳의 단체장 자리를 차지하며 에르도안 대통령 집권 이후 가장 큰 승리를 거뒀다. 1994년부터 이스탄불 시장을 지냈던 에르도안 대통령은 총력으로 선거운동을 지원했지만 판세를 뒤집지 못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앙카라의 AKP 중앙당사에서 “불행히도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며 “국민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패배를 인정했다.
앞서 이탈리아와 핀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 각국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집권당이 선거에서 패배했다. 대부분 넘치는 금융시장 유동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도화선이 됐다. 각국 중도우파 야당들은 과도한 정부 지출이 물가 상승을 불러왔다고 주장하며 정권을 잡았다.
다른 국가 선거에도 인플레이션이 중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물가 상승을 억누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 공화당 지지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원자재값 상승을 막기 위해 러시아의 달러화 석유 수출을 사실상 눈감아주기까지 하면서 물가 안정책을 폈지만 올 들어서도 2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매달 3%를 웃돌았다. 폴 도너번 UBS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장바구니 물가가 오는 11월 미국 대선의 가장 중요한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현일/한경제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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