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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밸류업, 국내 거버넌스 진단에서 시작해야”

입력 2024-04-05 06:00   수정 2025-07-04 12:50

[한경ESG] 커버 스토리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금융당국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업이 스스로 가치 제고 방안을 마련해 공시하면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가치를 어떻게 높여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한국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기업은 현대적 지배구조를 안착시키고 ESG 과제를 발굴해 경영 전략에 통합하며, 투자자는 수탁자 책임원칙을 기반으로 경영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치 혁신의 소재가 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대한 탐구도 필요하다.

지난 3월 26일 김혜성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원종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전문위원, 최진아 미래에셋증권 수석 연구위원과 함께 기업 밸류업과 ESG를 주제로 좌담을 열었다. 무엇보다 한국 기업과 투자자가 지배구조 개혁을 통해 반드시 다뤄야 할 경영 어젠다가 무엇인지, 한국과 일본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봤다.

- 한국 밸류업 프로그램을 어떻게 평가하나.



최진아 미래에셋증권 수석 연구위원(최 수석): “기업 밸류에 대한 정의가 없다. 사례가 된 일본의 경우, 명확하게 수익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기업 형태를 말한다. 한국에서 기업 밸류업은 주가 부양의 의미인지 기업의 본질 가치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의미인지 모호하다. 사실 일본은 경제 전략과 밸류업이 연결되어 있으며, 금융은 도구에 불과하다. 10여 년간 경제 전략으로 자기자본이익률(ROE)을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국의 기업 밸류업은 단기 처방으로 보인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류 대표): “정치적으로도 맞물려 있다. 총선을 앞두고 1400만 명에 달하는 주식투자를 하는 유권자가 있어 정책 당국자들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마련한 게 아닌가 싶다. 기본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낮은 ROE 문제는 분모와 분자를 모두 봐야 한다. ROE에서 분자는 이익, 분모는 자기자본에 해당한다. 분모는 결국 주주환원과 배당 성향 개선 등으로 해소할 수 있으나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분자적 요인이 크다. 미래 성장성이 약해 현금흐름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이번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역시 근본적 해법이 될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갖고 있다.”

원종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전문위원(원 전문위원): “밸류업이라는 단어가 지닌 어떤 상징성을 중시한 게 아닌가 싶다. 구조적 변화로 이끌기보다는 테마를 만들려고 한 게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다. 최근 시장이 반응하는 것도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자 하는 흐름이 있어서다. 자사주 소각 같은 노력은 하고 있지만,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거품을 만드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김혜성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김 변호사): “글로벌 위기 이후에는 스튜어드십 코드 그리고 지속가능한 성장이 화두가 되어왔다. 한국은 그 과정이 없었다. 주주와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이 오랫동안 지적되어왔음에도 경영진의 자세도 그렇고, 충분히 소통하는 메커니즘이 정착되지 못한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다시 낮은 PBR 문제로 돌아온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주주와의 커뮤니케이션 강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밸류업을 하기에는 한국 기업의 거버넌스가 취약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 수석: “한국은 기업과 투자자가 지속적인 비즈니스를 창출하면서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기업과 주주, 투자자들이 약간은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도 많지 않기에 기업도 경영권 보호에 힘쓴다. 한국은 거버넌스보다는 지배구조라는 대리인 문제에 치중된 상황이다. 최근 자체 연구를 통해 일반주주의 의견이 관철되지 못하는 기업경영에서는 재무적 수익성이나 ROE가 떨어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 기업 거버넌스의 선결적 과제는 대주주 지분율에 대한 유의미한 조정이다. 기업의 중장기적 가치 향상을 위한 의사결정 능력이 없다면 자사주 소각 쪽으로 유도해야 한다.”

류 대표: “결국 주주 최우선주의냐, 이해관계자도 고려하는 것이냐 사이에 답이 있다. 미국은 지난 100여 년간 치열하게 이러한 논의를 해왔다. 한국은 두 갈래 길 사이에서 길항작용이 없었다. 사외이사 제도를 포함해 각종 제도를 만들었으나 오히려 거버넌스가 낙후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공개는 자기 지분을 분산시키고, 그 반대급부로 자본을 용이하게 조달하는 것이다. 1973년 기업공개촉진법 시행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거버넌스와 관련한 별다른 논의도 없이 IMF 사태 이후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관점에서 기업 거버넌스를 받아들였다. 우리의 체질과 문화, 역사 맥락에 맞느냐 하는 논의가 전개되지 않아 ESG도 표피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밸류업을 본격화하기 이전에 한국적 맥락에 맞는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원 전문위원: “일본은 지난 10년간 정책적 노력으로 기업을 변화시켰다. 일본식 자본주의가 일본 기업에 먹혀든 것이다. 주주나 기업에 정책이 투명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한 덕분에 과실을 거뒀다. 우리는 그 노력을 생략하고 과실만을 가져오려고 한다. 장기 지속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고, 제도적 압력으로 기업가치를 제고하려 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 일본식 자본주의와 영미 자본주의의 공통점은 기업의 주인이 소수 재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인게이지먼트(경영 참여)는 간섭 내지는 과실을 빼앗아가려는 시도나 처벌이 아닌 성장성을 창출하기 위한 대화로 여겨질 수 있다. 그래야 기업에 투자하고 싶게 만드는 근원적 욕구를 발생시킬 수 있다.”

김 변호사: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대주주 소유 구조가 많다. 작은 경제 규모의 국가로서 갖는 약간의 불안감도 있다. 대주주가 없을 때 우리의 주요 기업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외하면, 지속가능성과 ESG를 다루는 이사회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효과적으로 기업 밸류업을 하려면 맨파워가 중요하다. 미국의 경우 전현직 CEO들이 사외이사를 많이 맡다 보니 기업의 가치와 관련해 상당한 기여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외이사 선임은 독립성 관점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사회가 기업가치를 높이는 선순환 효과를 만들기 위해선 역량 중심의 이사회 구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류 대표: “한국에서는 대표성, 힘을 실어준 사람의 이익을 대변하고 소통하는 권한을 갖는 것에 대한 논의가 없다. 사외이사가 주주를 설득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그러다 보니 사외이사가 영어 표현대로 독립이사가 되지 않고 사회성 좋은 네트워크를 지닌 사람들의 모임이 되고 있다. 사외이사 제도가 형해화된 상태에서 이사회 제도 중심의 경영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 ESG가 기업가치 혁신의 소재가 될 수 있나.

최 수석
: “ESG 경영과 기업가치의 관계는 기업과 투자자 모두가 분석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자사의 재무적 데이터를 토대로 내부적 분석을 해야 한다. 투자자들도 자본비용을 충분히 인식하고, 그 이상의 ROE를 내면서 협업하는 상호 교류를 위해서는 ESG 통합이 전제된 상황에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게이지먼트를 해야 ESG 경영이 진정한 의미에서 기업가치의 촉매가 될 수 있다. 최근 메타 연구를 종합하면 ESG 경영 요소와 재무 항목의 연관성은 상당히 높아진 상황이다. 향후 ESG 경영과 기업가치의 연관성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류 대표: “기업가치의 극대화는 자본 배분 최적화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제한된 자본을 어떻게 할당하느냐가 중요한데 생산 혁신, M&A, 부채 레버리지, 주주환원과 함께 ESG가 5가지 자본 배분 최적화 대상에 포함된다. ESG 투자 역시 투자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공시기준을 마련한 것도 결국은 재무 중대성을 전제로 ESG 공시를 하라는 의미다. ESG를 포함해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면 당연히 기업가치는 향상된다.”



김 변호사: “ESG 경영은 상당히 넓게 해석될 수 있다. 미국 내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대해 크게 비판한 배경이기도 하다. ESG가 경영진의 권한을 불분명하게 하고, 경영진이 자의적으로 많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ESG 경영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기업가치와 연관성을 이야기할 수 있으나 결국 ESG 공시가 법제화되면서 많은 부분이 기업가치와 연결되는 쪽으로 정리가 될 것이다. 특히 투자자가 앞으로 수익을 바탕으로 ESG 투자 전략을 발전시키면 기업가치와 ESG의 연관성이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 ESG 공시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기업가치 향상에 영향을 줄 수 있나.

류 대표:
“일반적으로 ESG 투자는 장기주의(롱터미즘)를 전제로 한다. 2000년대 초 영국의 펀드 회사에서 일할 때 가장 놀란 것이 롱터미즘의 강조다. 그때부터 영국의 투자사들은 기업에 기대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거버넌스와 전략, 이사회는 어떻게 구성해야 하고 경영은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공시하라는 것이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의 서한도 어떻게 보면 그런 맥락이다. 각 기업은 나름의 사정이 있으므로 투자자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기반으로 기업과 대화해야 한다. 앞으로는 인게이지먼트가 ESG 투자에서 대세가 될 것이다. 인게이지먼트만 전문적으로 하는 분야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투자자와 기업 사이에서 ESG를 주제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기업 밸류업과 관련해 국민연금의 역할이 현재 중요한 상황이다.”

- 해외 연기금과 비교해 국민연금의 ESG 투자가 미흡하다는 비판이 있다.

원 전문위원:
“국내에서는 투자 수익성과 지속가능성 간 심리적 괴리가 크다. 물론 국민연금이 바라보는 입장은 투자자적 입장이기는 하지만, 국민연금은 공공성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국민연금기금이 국내 전체 GDP의 약 35%를 차지하며, 우리나라 예산의 2배에 가까워서다. 국민연금의 투자 행위나 의사결정 자체가 시장에 주는 일종의 충격이 큰 상황이다. 특히 탄소중립 같은 문제는 국가 전력산업 전체의 문제와 연결되고, 재생에너지 도입도 사실 국민 삶의 문제지만 이념적 갈등이 있다. 그래서 현재로선 용역을 통해 ESG와 투자를 통합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단계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 일본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한 배경은 무엇인가.

최 수석:
“일본 기업의 힘이 상당히 크지만, 관의 힘이 엄청나게 세다. 밸류업을 이끌어온 것도 일본 정부다. 일본은 지난 10년 동안 사실상 ‘세뇌 교육’을 해왔다고 본다. 기업과 투자자에게 우리가 지금 일본의 재흥을 위해 하나의 의식을 갖고 서로 협업해 창조해가자, 이것이 국가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ESG 경영을 잘한다고 해서 밸류에이션을 높이는 게 아니라 무형자산의 일부가 ESG고, 그중 투자에 유효한 내용에 관심을 두는 것뿐이다. 일본은 ESG를 잘하고 있고, 이를 ESG 공시로 표현하면 중장기적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일본 공적연금(GPIF)도 지속가능성 공시를 요구하면서 시장이 안정화되도록 구조를 만들었다. 베타(변동성)를 낮추는 항목을 지속가능성에서 찾아 적용한 것이다. JPX 프라임 150지수 역시 뜯어보면 절대로 수익성이 담보될 수 없는 지수임을 알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ROE를 높이고 이를 유지할 수 있는 로드맵을 국가가 제시해야 한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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