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앞에 왜 사료를"…노후 아파트 길고양이 '갈등' [오세성의 헌집만세]

입력 2024-04-14 06:30   수정 2024-04-14 16:54


'웨에에에에엥! 오와아아아옹!'

40대 백모씨는 새벽마다 집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창문을 모두 닫아도 아파트 단지에 사는 길고양이들이 다투는 소리가 집 안까지 들려오는 탓입니다. 백씨는 "오래된 아파트라 터줏대감처럼 눌러앉은 고양이들이 제법 있다"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오니 귀여울 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낮에는 귀엽던 고양이가 밤에는 원수로 변합니다. 백씨는 "새벽만 되면 고양이들이 싸움하는지 단체로 울어댄다"며 "창문을 모두 닫아도 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잠을 자기 어렵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최근 출산해 신생아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30대 오모씨도 고양이 얘기만 나오면 잔뜩 날카로워집니다. 신생아에게 병원과 조리원에서는 없던 홍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생후 30일 된 오씨의 아이는 전문 업체가 소독한 집으로 온 뒤 얼굴에 홍반이 생기고 재채기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인을 찾던 그는 최근 자신이 사는 1층 집 발코니 밑에 누군가 고양이 사료를 놓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오씨는 "집 바로 아래에 고양이가 모여드니 면역력이 약한 아이에게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 것"이라며 "경고문을 붙였는데, 같은 일이 또 벌어지면 범인을 특수상해로 고소하겠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과 변려묘들이 문제라면 차라리 해결이 쉬울 수 있을 겁니다. 지어진 지 오래된 노후 아파트마다 길고양이 문제로 입주민들이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아파트가 지어지고 세월이 흐르는 사이 '영역 동물'인 길고양이가 흘러들어와 자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길고양이 자리 잡은 노후 아파트들…주민들은 '불편'
고양이는 약 2㎞ 반경에서 생활하고, 한 번 자리 잡은 곳에서는 잘 떠나지 않습니다. 노후 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가면, 그곳에 살던 고양이는 건물 사이에 숨어있다 그대로 죽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역 개념이 강합니다.

이런 고양이에게 지하에 '쓰레기 집하장'이라는 공간까지 있는 노후 아파트는 좋은 주거지가 됩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길고양이에게 사료와 물을 챙겨주는 캣맘·캣대디도 늘고 있습니다.

캣맘·캣대디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물론, 추위를 피할 쉼터까지 마련해줍니다. 먹이가 풍부해지니 단지 내 길고양이 숫자는 더욱 늘어납니다. 캣맘·캣대디는 "가여운 생명을 살리는 봉사 활동", "생태계를 파괴한 인간이 고양이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라며 늘어난 길고양이를 기꺼이 반깁니다.

하지만 사람의 거주지에 길고양이가 몰려들면서 일상의 피해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울음소리와 분변 냄새, 알레르기 유발 등은 물론 길고양이로 인해 어린아이가 위협을 느끼거나 길고양이가 볕을 쬐겠다며 차량에 올라가 차량 표면에 상처를 내기도 합니다.

겨울철에는 따듯한 온기에 이끌린 고양이가 자동차 엔진룸에 들어가고, 차주가 시동을 걸었다가 엔진을 못 쓰게 되는 경우도 생기곤 합니다. 이러한 피해가 누적되면서 주민들과 캣맘·캣대디 사이 갈등도 늘고 있습니다.

최근 울산 동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캣맘과 입주자대표회 사이 고소전이 벌어졌습니다. 캣맘 A씨가 사료를 두면서 아파트 단지에 길고양이가 몰려들었고, 아파트 입주자대표회는 주민 투표를 거쳐 단지 내 길고양이 사료 배식을 금지했습니다. A씨는 이 공고문을 무시한 채 밥을 줬고, 입주자대표회가 밥그릇을 치우자 절도와 재물손괴죄로 고소했습니다.
주민 피해에도 당당한 캣맘…결국 감정싸움 번져
입주자대표회도 공공기물파손과 공유지 쓰레기 투기로 A씨를 고소했습니다. 또한 주민들을 상대로 길고양이 피해 사례를 수집해 A씨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방침입니다. 길고양이로 인해 입은 상해나 자동차 훼손 사례를 모아 배상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민법에서는 고의뿐 아니라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에도 책임을 묻습니다. 사료를 주면서 길고양이를 관리한 당사자가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과실을 따지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판례를 살펴보면 주민들은 길고양이 사료를 임의로 치우기 어렵습니다. 사료는 캣맘·캣대디 소유물이기 때문입니다. 2022년 서울 동작구의 한 주민은 캣맘이 두고 간 사료통을 부숴 재물손괴로 벌금형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습니다. 캣맘이 둔 사료로 받은 피해가 인정돼 집행유예 처분이 나왔는데, 이 기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벌금도 내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캣맘·캣대디는 자신이 먹이를 준 길고양이가 벌인 사고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길고양이에 대한 관리 책임이 있다고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2020년 서울 은평구의 한 캣맘은 자신이 먹이를 주던 길고양이가 이웃 주민과 주민의 강아지를 공격해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2021년에는 캣맘의 길고양이 소유권을 인정하는 판결도 나왔는데, 향후 법정에서 캣맘에게 길고양이에 대한 책임을 한층 무겁게 물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민들의 피해가 가중되며 갈등이 깊어지고 있지만, 캣맘·캣대디는 '인간이 감수해야 할 일'이라는 입장을 숙이지 않습니다. 지난해 말,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한 아파트 공고문을 두고 캣맘들은 "동물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반발했습니다.
'동물권 보호' 주장하지만…해외선 엄격히 규제
1970년대 제기된 동물권은 동물도 사람처럼 즐거움과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이기에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는 주장입니다. 인간의 산업화와 주택 개발로 고양이의 터전을 빼앗았으니, 고양이의 동물권 보호를 위해 인간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동물권은 고양이에 한정된 개념이 아닙니다. 고양이가 잡고 죽이는 들쥐나 새에게도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고양이의 복지를 책임지라'는 주장은 '고양이가 죽이는 쥐와 새의 복지를 보장하라'는 주장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됩니다.

일본, 프랑스, 미국 등에서는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는 행위를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나라별로 세부 가이드라인은 다르지만, 임의로 사료를 주면 벌금을 물리고 심하면 징역형을 선고하기도 합니다. 길고양이를 돌보고 싶다면 지자체에 신원을 등록하고 정해진 급식소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합니다. 주변 주민 생활에 불편을 주면 시정명령과 과태료를 부과합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항상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로 유명한 과학철학자 칼 레이먼드 포퍼(1902~1994)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가벼운 선의로 시작한 행동이 주변 사람들을 지옥으로 이끄는 것은 아닐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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