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한때 대표적인 문화예술 강국이었다.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톨스토이 등 수많은 거장을 배출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들이 남긴 문화예술 유산을 활용해 매년 한 국가를 선정, ‘러시아 시즌’을 진행해왔다. 세계 최정상급 러시아 예술단체의 순회공연과 전시회 등을 집중 개최하는 형식이었다. 러시아 문화예술에 대한 각국 대중의 호감을 러시아에 대한 호감으로 치환하려는 의도였다.한국에서도 최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달 중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일 예정이었던 러시아의 발레 공연 ‘모댄스’가 전격 취소된 것. 주연 격인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과거 이력이 문제가 됐다. 볼쇼이 발레단 수석무용수인 자하로바는 ‘살아있는 전설’ ‘신이 내린 몸’이라는 극찬을 받아온 세계 최정상 발레리나다. 푸틴이 이끄는 통합러시아당 연방의원을 지냈고,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지지 서명을 하는 등 ‘친푸틴’ 행적이 부각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러시아 문화예술 보이콧은 문화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관련한 문제다. 상호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보이콧이 부적절한 조치라고 비판한다. 과연 그럴까. 문화예술과 정치는 본질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화예술은 이미지, 상징, 텍스트 등을 통해 대중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정치와 비슷하다.
하지만 일부 러시아 예술가에 대한 보이콧이 러시아 문화예술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는 푸틴 정권에 적극적으로 기여한 예술가도 있지만, 반대의 목소리를 낸 예술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피아노 신동 알렉산더 말로페예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끔찍하고 피비린내 나는 결정으로 모든 러시아인은 수십 년간 죄책감을 느낄 것”이라고 썼다. 러시아 태생 지휘자 바실리 페트렌코도 푸틴에 대한 비판 성명을 발표한 뒤 러시아 국립아카데미 교향악단 예술감독직을 내려놨다.
문화예술은 창작자의 생각과 감정을 대중에게 전달함으로써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독립적인 러시아 예술가들의 감정과 생각을 세계 각국 시민이 공유하는 것은 전쟁 종식을 요구하는 국제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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