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건드리지 마라…외국 작가들의 해방일지

입력 2024-04-02 18:53   수정 2024-04-03 00:42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예술 세계를 위한 토양이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안리 살라와 미에 키에르고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겹겹이 쌓은 프레스코화로, 거침없는 붓질로 완성한 회화로 한국을 찾았다. 이들이 공유하는 키워드는 해방이다.
‘억압의 탈출구’ 프레스코화
안리 살라한테 프레스코화는 억압적 사회의 탈출구였다. 서울 이태원동 에스더쉬퍼에서 오는 5월 11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Noli Me Tangere(라틴어: 노리 메 탕게레·나를 만지지 말라)’는 최근의 프레스코 연작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프레스코화는 덜 마른 회반죽 바탕 위에 안료를 겹겹이 채색하는 기법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기원했다.

살라는 프레스코화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프레스코화는 안료가 다 마르기 전까지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상할 수 없다”며 “주제 선정부터 드로잉, 채색까지 엄격히 통제하는 사회에서 내게 자유와 디톡스를 느끼게 해줬다”고 말했다. 살라의 조국 알바니아는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에 자리한다. 정권 교체가 빈번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유럽의 북한’이라 불릴 정도로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도 통제당하는 게 일상이었다.

살라는 회화보단 영화적 설치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다. 무채색 도시였던 고향이 알록달록한 사회로 변해가는 과정을 촬영한 ‘색칠해 주세요’(2003), 사라예보 내전의 역사적 기록을 편집한 ‘붉은색 없는 1395일’(2011) 등이 대표작이다.

전시장 2층에 걸린 ‘Noli Me Tangere Inversa’는 부활한 예수를 보고 마리아 막달레나가 기쁜 마음에 끌어안으려 하자 예수가 “나를 만지지 말라”고 말하는 순간을 묘사했다. ‘Surface to Air(지상에서 하늘로)’ 연작은 비행기에서 직접 촬영한 하늘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 대리석을 활용해 다른 유기질 없이 꽉 찬 부드러운 구름을 표현했다.
거침없이 달려가는 여성 ‘엄마’
가로세로 2m가 넘는 널찍한 그림 속에는 여성들이 테니스를 즐기고 있다. 이들은 네트 위에 앉아있거나 요가 자세를 취하는 등 본 경기에는 관심이 없다. 서울 한남동 파운드리에서 5월 11일까지 열리는 덴마크 작가 미에 키에르고르의 개인전 ‘게임체인저’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키에르고르는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로 독일 베를린, 런던을 넘어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를 오가며 개인전을 열고 있다.

그는 여성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통해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전한다. ‘엄마와 아이-새로운 땅들(Mother and child-new territories)’은 거침없이 배를 몰고 가는 여성과 이런 어머니를 믿고 의지하는 어린 아들이 등장한다. 작가와 어린 아들의 삶이 함축된 작품이다. 조선공으로 일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키에르고르의 작품에는 배(船)가 자주 등장한다.

그의 작품 곳곳에는 유머러스한 포인트가 돋보인다. 빛의 각도에서 어긋나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자, 허들을 뛰어넘지 않고 오히려 여기에 대롱대롱 매달린 여성 등이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가볍게 환기한다. 키에르고르는 “남녀평등의식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 덴마크에서마저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며 “저의 작품이 페미니즘만 대변하기보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위한 합창단의 일원으로 여겨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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