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누군가 나를 기다려준다면’에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풀어낸 5편의 단편소설이, ‘나만의 비밀’에 비밀을 간직한 이들을 그린 6편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이 책은 프랑스 작가 안나 가발다가 29세이던 1999년에 출간했다. 작은 출판사에서 초판 999부를 발간한 걸 보면 무명 작가의 첫 작품집에 큰 확신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장편소설만 우대하고 단편은 습작 정도로 여기는 프랑스 문학 풍토에서 이 책은 1년 넘게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며 70만 부나 팔려나갔다. 언론과 문단은 주목하지 않았지만 “소설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는 독자들의 고백이 이어지며 판매량이 올라간 것이다.
2017년 우리나라에서 발간될 때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는 전 세계 40개국에 판권이 팔린 가운데 190만 부가 판매되었다.
‘누군가 나를 기다려준다면’에 수록된 다섯 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생제르맹데프레의 연인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출판사 여직원이다. 거리에서 운명적인 느낌의 남자와 마주치자 미소를 날린 뒤 무심한 척 지나친다. 저녁을 함께하자는 그 남자의 제안에 다시 만난 그녀는 그 남자의 태도와 옷차림을 훔쳐보며 점점 빠져든다. 하지만 남자가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에 신경 쓰는 걸 보고 미련 없이 돌아선다.
‘앙브르’는 순회공연을 하느라 늘 피곤한 남자의 이야기다. 프리랜스 사진가 앙브르는 그 남자의 순회공연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앙브르가 그 남자에게 내민 사진에는 “샛강 같은 정맥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야위고 커다란 손”뿐이었다. 앙브르는 왜 손만 찍었고, 그 남자는 왜 “내 심장은요?” 하고 묻는 것일까.
‘휴가’는 입대한 지 석 달 만에 휴가 나온 병사의 이야기다. 자신의 자리를 엉뚱한 아줌마가 차지하는 바람에 남의 자리에 엉거주춤 앉아서 온 그는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기차역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다. 힘이 빠져 깜깜한 집의 문을 열자 ‘생일 축가’ 노래와 함께 불이 켜진다. 그 자리에 열 살 때 여름 캠프에 같이 갔던 마리가 와 있다. 두 사람의 추억에 대해 마리가 질문하지만 그는 짐짓 모른 체한다. 일반 사병인 그와 달리 늘 자신만만한 학군장교 동생도 마리를 마음에 들어 한다. 추억은 힘이 센 법, 아무래도 그와 마리가 맺어질 듯하다.
‘클릭클락’은 다섯 달 보름째 판매 주임 사라 브리오에게 사랑을 느끼는 남자가 두 명의 누이와 한집에서 복닥거리며 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사라 브리오에게 선물하려던 속옷을 들킨 그는 결국 독립하고, 작고 복잡한 집으로 사라 브리오가 햇살처럼 눈부신 모습으로 들어선다.
여성 작가가 쓴 다섯 편 가운데 네 편의 주인공이 남성이다. 각기 다른 직업군과 상황이 마치 옆에서 벌어진 듯 선명하고 정겹게 펼쳐져 여러 사람이 쓴 것처럼 다채롭다는 게 매력이다. 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마다 명확한 결말을 짓지 않아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 것도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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