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판매정책' 아니고 '판매전략'이에요

입력 2024-04-08 10:00   수정 2024-04-08 15:46


‘슈퍼주총 시즌’이 끝났다. 12월 결산 국내 상장법인의 정기 주주총회 일정이 3월 하순께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즈음에 늘 따라다니는 말 중 하나가 ‘주주환원정책’ 또는 ‘주주친화정책’이다. 이와 함께 빠지지 않는 말 중 ‘배당정책’도 있다. 이는 기업 이익을 주주들에게 언제, 어떤 형태로, 얼마나 분배하느냐에 대해 기업이 세운 방침을 말한다. 요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부각되니 ‘기업의 ESG 투자정책’이란 표현도 자주 눈에 띈다.
‘정책’은 정부·정치권에서 쓰는 말
주주친화정책, 배당정책, 투자정책… 민간기업에서 사용하는 이런 말을 의심 없이 써도 되는 것일까? 다음 문구를 보면 이들 ‘정책’이 왜 문제가 되는지 알 수 있다. “사회 취약계층을 배려하는 고용정책 운영.” 얼핏 보면 마치 정부의 ‘고용정책’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는 대목 같다. 사실 어느 기업의 ESG 경영 실천 전략의 하나로 제시된 것이다. 그러니 상황에 맞지 않고 어색한 느낌을 준다. “국내에서 고가정책으로 ‘배짱 영업’ 하던 해외 명품 브랜드.” 이때 쓰인 ‘고가정책’은 어색함의 정도가 더하다.

이에 비해 다음 문장에 쓰인 정책은 자연스럽다. “정책서민금융 상품 중 하나인 소액생계비대출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정부의 ‘외국인 투자정책’이나 ‘금리정책’도 눈에 익숙한 표현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정책이란 말의 정체를 알면 이해가 된다.

‘정책(政策)’은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꾀하는 방책”을 말한다(<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의 풀이는 좀 더 구체적이다. “정부나 정치 단체, 개인 등이 정치적인 목적을 실현하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취하는 방침이나 수단”이라고 했다. 그러니 ‘정책’은 행정 또는 정치 용어로 써야 적절하다. 쓰임새를 보면 더 분명하다. ‘외교정책, 교육정책, 경제정책, 산업정책, 문화정책, 복지정책, 국방정책, 통상정책, 환경정책, 외환정책, 통화정책’ 같은 게 용례다. 정부나 정치권에 쓰는 말이란 게 드러난다.
민간기업에는 ‘전략·방침’이 어울려
민간에서는 상황에 따라 ‘전략’이나 ‘방침’ ‘지침’ 등을 쓰는 게 좋다. ‘전략’은 본래 군사용어이지만, 요즘은 의미와 쓰임새가 확대돼 경제·사회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책략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판매 전략, 전략 상품, 가격 전략’ 등이 있다. 따라서 기업체 등 민간에서의 행위에 대해선 ‘정책’ 대신 ‘전략’을 쓰는 게 적절하다. 이를 자칫 ‘판매정책, 정책상품, 가격정책’ 식으로 쓰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다.

‘방침’이나 ‘지침’을 쓰기도 한다. “회사 정책에 따라 오늘부터 출근 시간은 오전 10시다.” 이런 표현이 왜 적절치 않은지 이제 알 수 있다. ‘회사 정책’이 아니라 ‘회사 방침(지침)’이라고 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경영정책’보다 ‘경영방침’ ‘경영전략’ ‘경영지침’ 같은 게 말의 쓰임새 측면에서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앞에서도 “고가정책으로 배짱 영업”이 아니라 “고가전략으로 배짱 영업”이라고 해야 한다.

응용해보자. 최근 글로벌 전기차 판매 1위 기업인 중국의 비야디(BYD)가 국내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를 전한 다음 문장은 어디가 문제일까. “중국 브랜드 대부분이 공격적인 가격정책 중심의 시장전략을 구사하는 점을 고려했을 때 비야디는 상당한 가격경쟁력을 갖출 가능성이 크다.” 문제 되는 부분은 ‘가격정책 중심의 시장전략’이다. ‘정책’과 ‘전략’의 차이를 구별하면 된다. 그러면 여기서 ‘가격정책’이란 표현이 적절치 않다는 게 드러난다. ‘가격전략’이 마땅하다. 그런데 뒤에 ‘시장전략’이 나오니 잘 어울리지 않는다. 결국 정확한 표현은 ‘가격 중심의 시장전략’이다. 시장전략에는 가격이나 성능, 디자인 중심의 전략이 있다. 그러니 ‘가격 중심의 시장전략’이지 ‘가격정책 중심의 시장전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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