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업일치를 실현한 독립서점의 책방지기들, 서점의 지평을 넓히다

입력 2024-04-09 18:43   수정 2024-04-09 18:44

[한경잡앤조이=이진호 기자 / 황지윤 대학생기자] “지금 당장 지구가 멸망할 때가 돼서 단 한 권도 팔리지 않는대도, 이 책들을 다 가지고 있다면 행복할 거예요”. ‘세화 영어책방’을 운영하는 박세화 씨가 한 말이다. 독서 인구 감소 및 지역서점 문화 활동 지원 예산 삭감으로 고충을 겪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박 씨는 “수익적인 측면보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이를 매개로 타인과 소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라는 말이 있듯이, 상당수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했을 경우 수반될지 모르는 경제적 어려움 및 흥미 상실로 적성과 상반되는 진로를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아 이른바 ‘덕업일치’를 실현하며 서점의 지평을 넓히는 독립서점의 책방지기들이 있다.

취향을 살린, 개성 있는 서점으로 이목을 끌어라



‘2022 동네서점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독립서점은 815곳으로, 2015년 대비 9배가량 증가했다. 이는 독립서점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다. 실제로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의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2022 동네 책방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약 80%가 이전과 달리 동네 책방을 ‘문화와 취향을 즐기는 공간’으로 바라본다고 응답했다.

최근, 여행 유튜버들의 국내 여행 코스에 독립서점이 다수 포함된 것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경험과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독립서점이 지역 문화를 향유할 방법이자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떠오른 것이다. 이에 독립서점 운영자는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가 반영된 책을 진열하고 큐레이션을 통해 방문객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감독 유시형 씨는 국내에 거의 없는 영화 전문 독립서점 중 하나인 ‘파움스서울’을 운영하고 있다. 유 씨는 “우리는 ‘이미지가 이 시대의 새로운 텍스트다’는 생각으로 엄선한 사진집과, ‘영화적인’ 책 등을 취급해 판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책 판매만 고수하던 과거와 달리, 서점의 공간적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며 “개개인에게 쉼터, 카페, 서점 등 복합 문화 공간 역할을 하는 독립서점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책, 익다’는 ‘책 읽고, 술 익고, 사람 있는 공간’을 캐치프레이즈로 삼는 독립서점이다. 운영자 전유겸 씨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술을 겸하며 독서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확장돼 창업으로 이어졌다”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손님들이 주로 방문한다”고 말했다.

‘책, 익다’는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에 걸맞은 책을 진열해 큐레이션을 하고 있다. 전 씨는 “코로나 이후 자아의 탐구와 심리적 성장에 집중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심리 서적이나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에세이를 위주로 매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중되는 독립서점 존폐 위기...수익구조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어

현재 독립서점은 △지역 서점 문화 활동 지원 사업 폐지 △도서정가제 완화 정책 추진 △대형서점 독과점 및 마케팅 등으로 난처한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해 60억 원이 지원된 ‘국민독서문화증진’ 사업과 6억 5천만 원이 지원된 ‘지역서점 문화활동 지원’ 사업 등 지역 서점 문화 활동 지원 사업을 폐지했다. 또한, 지난달 문체부에서 발표한 ‘2024년 규제혁신 5대 기본방향과 20대 추진 과제’에 따르면, 지역서점에 한해 15% 이상 할인 판매를 허용하는 도서정가제 완화 정책 추진이 결정됐다.

전 씨는 “쌓여있는 재고가 많은데도 도서정가제로 인해 싸게 팔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도서정가제의 함정을 꼬집었다. 그는 “대형서점과 달리, 비싸게 책을 매입하고 별다른 적립금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은 독립서점의 사정상 할인을 더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세화 영어책방 △ 소수책방 △책, 익다 △파움스서울 총 4개의 독립서점은 대형서점으로의 책 구매 쏠림 현상에 대해 “소비자 입장에서 바라볼 때, 다양한 책을 제공하고 빠르게 책을 배송해 주는 대형서점을 찾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유 씨는 “대형서점만의 역할이 있듯이, 독립서점도 기존에 쉽게 볼 수 없는 책을 제공하고, 고루한 서점 이미지에서 탈피한 특색 있는 모습을 통해 서점의 이색적인 재미를 보여주는 것이 역할”이라고 말했다.

독립서점의 존폐 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독립서점은 생계유지를 위한 나름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서점 4곳은 모두 한목소리로 “도서 판매로만 생계유지를 이어가기보다, 책을 매개로 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해 부수입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세화 영어책방’은 언어교환(한국어-영어) 모임을, ‘책, 익다’는 글쓰기 모임과 작가 토크를, ‘파움스서울’은 시나리오 워크숍과 영화인과의 대화 등을 진행하고 있다.



‘소수책방’을 운영자이자 작가 김문 씨는 식음료 판매, 시 합평 수업, 독서 커뮤니티 ‘트레바리’와 연계한 독서 모임 외 ‘소수레터’를 발행해 부수입을 얻고 있다. ‘소수레터’에는 김 씨가 직접 작성한 3,000자 이상의 에세이가 다수 수록돼 있다. 김 씨는 “정보성의 글을 위주로 한 기존의 뉴스레터와 달리, ‘소수레터’는 작가만의 생각을 담은 글의 집합체”라고 설명했다.

독립서점 운영의 핵심은 지속가능성

‘덕업일치’를 실현하는 삶에 대한 만족도는 어떨까. 전 씨는 책방지기의 삶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드러냈으며,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대신 맞닥뜨리게 된 경제적 문제에도 끄떡없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놀랍게도 독립서점을 운영하면서 힘든 점이 하나도 없다”며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기보다 생계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소득을 버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밝혔다. 그는 “무엇보다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둔다”며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말했다.



향후 독립서점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박 씨는 “책방을 운영하려면 책을 웬만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하는 것 같다”며 “금전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업이기 때문에 책을 사랑하지 않으면 금방 지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독립서점을 오랫동안 이어가는 데 있어 책에 대한 애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씨는 “개인적으로 내가 책방 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항상 서점 존폐를 두고 고민하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뒤이어 그는 “책을 추천하기 위해서는 다독과 속독이 중요하다. 한 달에 20~30여 권의 책을 빨리 읽을 수 있을 정도의 기술적인 부분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책방과 구별되는 차별화를 강구하는 것과 월세가 저렴한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며 현실적이면서 진심 어린 조언을 남겼다.

jinho23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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