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선 명화, 옥상선 경치…안팎으로 예술 감상하는 호텔

입력 2024-04-11 18:56   수정 2024-04-12 03:11


36년간 포르투갈을 철권 통치한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는 1950년 내각에 특별한 지시를 내린다. 리스본에 여느 유럽 국가 수도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만한 최고급 럭셔리 호텔을 지으라는 것. 살라자르의 지시에 포르투갈의 최고급 인적·물적 자원이 투입됐다. 설계도는 당대 포르투갈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는 포르피리우 파르달 몬테이루가 잡았다. 그는 과거를 흉내 내기만 하는 건물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준 르코르뷔지에의 사조를 따라 황금 비율의 모더니즘 건축물을 완성했다.


그의 디자인은 투박하지만 실용적이었다. 객실마다 리스본 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발코니를 설치했고, 넓은 로비와 라운지를 만들었다. 언뜻 딱딱해 보일 수 있는 호텔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유명한 장식가 앙리 사무엘이었다. 사무엘은 아르데코 스타일 인테리어로 차가운 외관을 중화했다. 지금까지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포르투갈 최고의 호텔’이란 찬사를 받는 포시즌스호텔 리츠 리스본의 탄생 스토리다.
포르투갈 정·재계 인사 단골

살라자르는 새 호텔이 포르투갈을 넘어 유럽 최고의 호텔이 되기를 꿈꿨다. 그래서 가장 중요했던 게 호텔 이름이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브랜드는 당대 최고의 럭셔리 호텔로 꼽힌 프랑스 파리의 ‘리츠’였다. 파리 리츠호텔과 아무런 연관은 없었지만 협상 끝에 리츠라는 이름이 붙었다. 포시즌스호텔그룹은 1997년 이 호텔을 인수하면서도 리츠호텔의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며 리스본 시민들의 인식 속에 ‘리츠 리스본’이라는 이름이 ‘리스본 최고의 호텔’이라는 뜻의 단어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살라자르는 1974년 4월 카네이션 혁명으로 36년에 걸친 철권 통치의 막을 내렸지만 그의 지시로 태어난 걸작은 그대로다. 호텔이 세워진 곳은 리스본의 허파로 불리는 26ha(헥타르) 면적의 에두아르도 7세 공원 바로 앞. 언덕 위라 리스본 도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공항에서 가까운 최적의 위치다.


포시즌스 리츠 리스본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레노베이션 공사를 마친 뒤 주변 어느 호텔보다도 현대적으로 탈바꿈했다. 각 객실의 터줏대감이던 앤틱 가구는 보다 현대적인 가구로 대체됐다. 대신 객실 한편을 차지하는 램프와 책상은 그대로 놔뒀다. 이 호텔의 객실에 들어서면 오래된 앤티크함과 모던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발코니 너머로 펼쳐지는 리스본의 전경과 함께 방 어디에서도 조명, 커튼, TV 조작이 가능하다.
하나의 갤러리 같은 로비

건축가 몬테이루는 당대 포르투갈 최고의 화가이던 알마다 네그레이루스와 친구였다. 덕분에 네그레이루스를 비롯해 수많은 포르투갈 예술가 작품들이 포르투갈 최초의 럭셔리 호텔 곳곳을 장식했다. 로비를 지나 화려한 꽃장식이 있는 라운지로 들어서면 태피스트리로 디자인한 켄타우로스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네그레이루스의 대표 작품이다. 피카소로부터 영감을 받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그는 다른 데서 보기 힘든 독특한 작품으로 호텔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포시즌스호텔은 그를 기리는 뜻에서 라운지도 그의 이름을 따 ‘알마다 네그레이루스 라운지’라고 이름 붙였다.

네그레이루스뿐만이 아니다. 호텔 로비와 레스토랑 곳곳에서 퀘루빔 라파, 마틴스 코레이아, 카를로스 보텔류 등 20세기 포르투갈 미술계를 이끈 수많은 예술가의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포시즌스 리츠 호텔은 포르투갈 최고의 현대미술관 중 하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옥상 트랙에서 조깅하며 노을 바라볼까
오랜 역사와 예술이 깃든 호텔이지만 이곳의 백미는 리스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이다. 꼭대기 층에 있는 피트니스센터를 방문해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리스본 구도심의 7개 언덕은 물론 저 멀리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빼닮은 4월 25일 다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피트니스센터 밖으로는 육상 트랙이 설치돼 있다. 리스본의 일출과 석양을 한눈에 담으며 조깅할 수도, 연인과 로맨틱한 산책을 할 수도 있다.


1층의 미쉐린가이드 스타 레스토랑 ‘쿠라’에서는 포르투갈 각 지역의 특산 와인과 완벽하게 페어링 된 퓨전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쿠라는 코스에 포함된 모든 접시를 ‘순간(moment)’이라고 부른다. 하나하나의 접시가 완벽한 순간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다. 레스토랑 셰프 페드로 페나 바스토스는 매일 지역의 작은 가게들에서 신선한 재료를 받아온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걸작은 그대로 남았다. 1960년대 포르투갈 사교계 인사들이 대화를 나누던 로비에 걸려 있는 미술 작품들도, 1970년대 민주화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밀담을 나누던 레스토랑 ‘바란다’도 그대로다. 로비를 환하게 밝히는 샹들리에는 변함없이 오는 손님을 반기고 서 있다.

리스본=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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