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을 '식인종' 취급하는 엘리트들에게 [한경 코알라]

입력 2024-04-17 10:05   수정 2024-04-1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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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린이 만화나 개그 프로그램 등에서 '식인종'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보통 옷을 얼마 입지 않은, 피부색이 어두운, 그리고 정교하지 못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소위 '토인'으로 묘사되는 식인종은 문명사회에서 온 백인들을 잡아먹는 위험한 사람들로 그려졌다.

그러나 '식인종'에 대한 묘사는 요즈음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식인종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허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아래 이미지는 1938년에 제작된 'Jungle Jitters(정글 지터스)'의 한 장면으로,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가 1968년에 배포를 중단했다.

콜럼버스와 식인종, 그리고 노예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탐험은 현대의 스타트업과 유사한 과정으로 시작됐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고 '위대한 칸의 나라'에 대한 동경을 가진 콜럼버스는 항해 사업 계획을 여러 나라 왕실에 발표했고, 결국 스페인 왕실로부터 신대륙 총독 작위와 세 척의 배를 투자받았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엔젤 투자나 시드 라운드와 같은 형태였다.

투자를 유치한 콜럼버스는 실적 압박에 시달렸다. 1492년 첫 번째 항해에서 신대륙을 발견하고 신의 이름으로 그 땅이 스페인 여왕의 영토임을 선언했지만, 열일곱 척의 배를 받아 더 큰 실적을 내야 했던 두 번째 항해에서는 신대륙 경작과 금광 채굴에 원주민들을 동원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폭력, 성폭행, 살인도 저질렀다. 본격적으로 원주민들을 노예화하기 시작했다. 신대륙의 금 산출량은 매우 부족했고, 금 대신 보여줄 것이 필요했던 콜럼버스는 스페인 왕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예를 송출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수백 년간 지속된 '노예무역'의 시작이었다. 원주민들은 노역에 동원되어 일하다가 죽거나, 노예로 팔려 가거나, 팔려 가던 도중 죽었다.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스페인 왕실이 금지했던 노예무역이 어쩌다 그렇게 번성하게 되었을까? 1500년에 스페인 왕실이 공포한 칙령(decree)에 그 답이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스페인 여왕은 신대륙의 원주민을 노예로 만드는 것을 금지했지만 세 가지 예외를 두었다. 정의로운 전쟁에서 포로가 된 경우, 원주민 노예상으로부터 구매한 경우, 그리고 식인을 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다. 이 중 마지막 예외 조항이 신대륙에서 활동하는 뱃사람들과 노예상들에게 아주 유용하게 쓰인 것으로 보인다. 노예상인 입장에서는 아무나 일단 잡아 가두고 '식인종이라서 노예로 만들었다'라고 주장하면 되는 것이었다.
식인종은 실제로 존재했나?
콜럼버스 본인도 신대륙에서 만난 원주민들이 위험한 식인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근거는 콜럼버스가 남긴 탐험일기에서 찾을 수 있다.

<i>"그들에게는 무기가 없다. 칼을 보여줬더니, 무식하게도 칼날을 잡아서 손을 다치더라. 그들에게는 쇠도 없다. 그들의 창은 나무막대기다."</i>

또한 콜럼버스는 스페인 왕실에 보낸 편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i>"이 사람들은 재주가 많아 훌륭한 하인(servant)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이들은 종교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매우 쉽게 기독교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새를 강화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여기 사람들은 전쟁과 같은 일에 바보 같으며, 우리의 언어를 배워 돌아오라고 제가 스페인으로 보내 드린 일곱 명을 보시면 전하께서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i>

콜럼버스가 자신을 믿고 투자한 스페인 왕실에 위험한 식인종 일곱 명을 실어 보냈을 리는 없다. 콜럼버스는 그가 만난 원주민들은 착하고 순진하며, 재주가 많은 사람이라고 기록했을 뿐, 직접 식인종을 만났거나 식인 행위를 목도했다는 언급은 없었다. 단지 콜럼버스가 만난 원주민이 ‘어떤 부족은 식인을 한다더라’라는 말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콜럼버스는 금광에 동원할 노예가 필요했고, 금이 나오지 않자 금 대신 스페인으로 실어 보낼 '실적'인 노예들이 필요했을 뿐이다. 스페인 왕실은 식인종은 노예로 만들어도 된다고 허락했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남미 원주민들은 콜럼버스와 같은 유럽인들에 의해 식인종이 되어 수백 년간 죽고, 다치고, 팔려나가게 된 것이다.
콜럼버스와 겐슬러
가상자산 업계와 시장을 가장 괴롭히는 사람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개리 겐슬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이다. 겐슬러가 이끄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2020년 리플(XRP) 소송을 필두로 수많은 거래소와 가상자산에 '증권성' 소송을 난사해대는 것은 물론, 기회가 될 때마다 가상자산이 범죄의 온상이며 사기로 만연해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수많은 업체가 적법하게 신청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신청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기 또는 기각했으며, 5월에 최종 기한이 다가오는 이더리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신청서도 승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개리 겐슬러가 한때는 가상자산을 지지하는(pro-crypto) 입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미 상품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으로 근무한 후 2018년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슬론 경영대학에서 진행한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에 대한 강의에서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남겼다.

<i>"법정화폐는 많은 불안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중앙화된 중개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 경제적 지대(rent)에 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기회는 있습니다. 블록체인은 금융 세계에 들어와서 어떤 일들을 더 잘 해낼 진정한 기회가 있습니다."</i>

또한 2019년 그는 가상자산 전문매체인 코인데스크에 아래와 같은 글을 기고했다.

<i>"수천 개의 프로젝트가 아직 널리 채택된 사용 사례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저는 사토시(비트코인 창시자)의 혁신이 촉매제로서 직간접적으로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잠재력에 여전히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 지대(rent)와 데이터 프라이버시 비용을 낮추고 경제적 포용을 촉진하기 위해 검증 및 네트워킹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잠재력을 추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또한, 공유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은 역사적으로 파편화돼 있거나 변화에 탄력적이지 못했던 분야에서 다자간 네트워크 솔루션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은 기존 기술에 혁신적인 자극제 역할을 하는 다소 덜 야심 찬 형태일지라도 이미 실질적인 변화를 촉발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수 있습니다."</i>

그러나 2021년에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으로 임명된 후 겐슬러는 가상자산에 대한 입장을 180도로 선회한다.

<i>(가상자산 광풍에 대해) "이런 이야기는 전에 본 적이 있다. 연방 증권법이 제정되기 전인 1920년대에 있었던 일을 연상시킨다. 행상꾼(hucksters), 사기꾼(fraudsters), 스캠 아티스트, 폰지 사기. 파산 법원에 길게 줄 선 사람들." (2023년 6월 파이퍼 샌들러 글로벌 거래소 & 핀테크 컨퍼런스에서)

"금속 ETP의 기초 자산은 소비자 및 산업용으로 사용되는 반면 비트코인은 주로 랜섬웨어, 자금 세탁, 제재 회피, 테러 자금 조달 등 불법 활동에도 사용되는 투기적이고 변동성이 큰 자산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2024년 1월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 직후 SEC 웹사이트에 게재한 성명서에서)

"업계 전체가 사기와 오남용으로 만연하다." (2024년 3월, 이더리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i>

신대륙의 원주민들이 무기를 쓸 줄도 모르고, 전쟁에는 바보 같지만, 재주가 많아 훌륭한 하인이자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며 이사벨 여왕에게 자랑하던 콜럼버스가 갑자기 그들이 식인종이라서 노예가 되어야 한다고 돌변한 모습이 겹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던가. 겐슬러가 속한 미국 민주당의 당론이 가상자산 반대 입장이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가상자산을 증권(security) 범주 안에 포함하는 이익이며, 겐슬러가 차기 재무부 차관 및 장관 후보로 언급되기는 하지만, 임명 전과 후가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미국 자본시장을, 더 나아가 전 세계 자본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료이자 지식인이 이렇게 돌변하는 것이 과연 진실하고 합리적인가. 콜럼버스처럼 개인의 영달이 목적이 아닐까.
겐슬러뿐만이 아니다
표리부동한 자들은 겐슬러 뿐만이 아니다. 제이피 모건은 자체 블록체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더리움 인프라 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고, 최근 탈중앙화 금융(DeFi)을 통해 국가 간 송금 실험도 진행했지만 제이피 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가상자산은 범죄자들만 쓰는 것"이라며 소리높여 비난한다.

버크셔 헤서웨이는 지난 2021년 브라질 가상자산 거래 서비스 업체 누뱅크(Nubank)의 모회사인 누홀딩스(Nu Holdings)에 7억5000만 달러를 투자해 큰 수익을 거두었다. 그러나 워런 버핏은 비트코인을 "쥐약의 제곱"이라고 비난한다. 금융위원회가 2017년부터 기관의 가상자산 보유와 거래를 전면 금지했지만, 우리 국민연금은 미국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 주식에 투자해 600억원의 수익을 거둔 것과 매우 유사하다.

골드만삭스의 샤민 모사바-라마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난 4일 가상자산은 "투자자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We do not think it is an investment asset class)"고 말했지만, 다음날 골드만삭스는 블랙록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인 IBIT의 지정참가회사(AP)로 등록했다. 자사 고객들에게 블랙록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를 판매한다는 뜻이다.
500년 전 '식인종 전설'과 가상자산
노예상들과 뱃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죄 없는 남미 원주민들을 사냥하고 포획하고자 '식인종 전설'을 만들어 낸 1500년대와 지금은 다르다고 믿는다. 500년의 시간 동안 인류는 발전했고, 그 결과 더 나은 사리 판단 능력과 도덕적 양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직도 각국 정부가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을 대하는 모습은 500년 전 콜럼버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땅에서 식인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 땅의 사람들은 모두 식인종이고, 나쁜 식인종은 잡아 가두거나 죽여도 괜찮다는 식이다.

할리우드 좀비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심리적 기술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전쟁영화는 보기에 불편해서 상업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폭력과 학살의 대상이 '사람이 아닌 나쁜 것들'이면 학살에 죄책감은 사라지고 쾌감만이 남는다. 주인공이 기관총을 난사해도 편안하다.

"비트코인 그거 다 사기다"라는 식의 무지한 흑백논리, "가치도 없는 게 1억원씩이나 하니 말이 안 된다"라는 식의 근거 없는 선악 판단이 그렇다. 지식도 책임도 없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할 법한 생각과 말들을 법과 규제를 만들어야 할 엘리트 리더들이 똑같이 하고 있다.

카리브 제도에서 식인 행위는 있었다. 크게 부풀려지고 과장되었지만, 행위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가상자산 업계도 완전무결하지는 않다. 사기나 범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업계에서 사기나 범죄가 발생했다고 해서 업계 전체가 "사기와 오남용으로 가득하다"라고 매도하는 것은 "남미 원주민은 전부 식인종"이라고 우기던 500년 전 노예상들과 다를 바 없다.

<i>"이걸 불법 행위에 사용할 수 있지요. 당연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범죄 그 자체가 새로운 게 아닙니다. 메커니즘과 방법이 새로울 뿐이지요."</i>

2018년 매사추세츠공과대학 슬론 경영대학에서 게리 갠슬러가 강의 중에 한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기와 범죄는 있었고, 현금과 은행 계좌를 사용한 금융 범죄는 가상자산 관련 금융 범죄보다 더 많이, 더 오래, 더 크게 있었다. 세이셸이나 버진아일랜드보다 유럽과 중동, 아시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훨씬 많은 것과 같다.

살인은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류 사회의 보편적인 상식이다. 가상자산이든 은행 계좌의 달러든 그것을 이용한 사기와 범죄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그런데, 가상자산은 가상자산이라서 사기와 범죄라는 논리는 곤란하다. 그것은 500년 전 노예상인들의 비열한 명분과 다르지 않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센터장을 맡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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