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천장에 깔려 죽을 뻔했다"…끔찍한 사고에 '분노' [오세성의 헌집만세]

입력 2024-05-04 06:52   수정 2024-05-04 14:20


사람이 나이가 들면 몸 곳곳이 아파지듯 아파트도 낡아갈수록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엘리베이터는 고장 나고 콘크리트 벽에는 균열이 생기며, 배관이 녹슬어 녹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재건축·리모델링 등 재정비를 계획한 아파트들이 수선 계획을 미루면서 주민들의 불편도 커지고 있습니다. 수선 계획을 미루는 이유는 재건축·리모델링입니다. 장기수선충당금이 있긴 하지만, 조만간 허물고 새로 지을 아파트에 돈을 들여 수리하는 것은 낭비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수도권 한 노후 아파트에 사는 박모씨는 지난달 내리는 비에 깜짝 놀랐습니다. 창문을 모두 닫은 상태였는데도 밖에서 내리는 비가 집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오고 있던 탓입니다. 벽을 타고 들어온 빗방울이 집 안에서 떨어지고 있었는데, 발코니에 둔 짐과 세탁기 등 가전제품은 모두 흠뻑 젖은 상태였습니다.

이는 아파트가 낡아 외벽에 균열이 생기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박씨는 비가 그친 뒤 업체에 점검을 의뢰했고, 공용부 외벽 균열에서 빗물이 샌 것을 확인했습니다. 박씨는 "재건축을 핑계로 아파트 수선을 미루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이 아파트는 예비 안전진단을 통과한 상태입니다.
재건축·리모델링 추진하는 노후 아파트들, 사실상 하자 방치
그는 "관리사무소에 수선을 요구했지만, 재건축이 예정된 만큼 자체적으로 확인한 뒤 필요하면 추후 외벽공사 일정을 잡겠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업체에서 수리비가 100만원 정도 들어갈 것이라고 안내받았다"며 "관리사무소의 조치가 늦어지면 올해 장마가 오기 전에 직접 처리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아파트 수선을 미루다가 주민이 안전을 위협받기도 합니다. 지난해 1시 신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천장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아파트 물탱크를 청소한 물을 흘려보냈는데, 아파트 최상층 천장으로 스며들며 그대로 무너진 것입니다. 옥상 방수 관리에 소홀했던 상태이다보니 벌어진 일입니다. 무너지는 천장에 깔리기라도 했으면 인사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해당 입주민은 부동산 커뮤니티를 통해 "천장은 아파트 측에서 수리해줬지만, 천장이 무너진 충격에 견딜 수 없어 도망치듯 이사 나왔다"며 "부수고 다시 지을 거라는 이유로 아파트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이 아파트는 리모델링을 추진하다 최근 재건축으로 노선을 선회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부수고 새로 지을 텐데'라는 생각에 방치하다보니 사고를 부른 것입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특히 노후 계획도시 재정비와 맞물려 선도지구 경쟁이 치열한 분당·평촌·산본·일산·중동 등 1기 신도시에서는 언제든 동일한 문제가 빚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선도지구 지정 기준 가운데 '노후도와 주민 불편' 항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토교통부는 이달 중으로 선도지구 세부 지정 기준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대략적으로는 △주민 참여도 △노후도 및 주민 불편 정도 △도시기능 향상 가능성 △모범사례 확산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보겠다는 방침입니다. 여기서 노후도 및 주민 불편 정도는 가구당 주차대수 등 수치화된 항목뿐 아니라 아파트 노후화로 인해 주민들이 겪는 불편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도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분당 시범단지에서는 지난해부터 노후 엘리베이터를 교체하자는 논의가 나왔습니다. 엘리베이터 속도가 느려졌고 오작동도 늘면서 주민 불편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해당 논의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돈을 들여 엘리베이터를 교체했다가 가장 먼저 재건축에 나서는 선도지구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여파입니다.

올해 초 성남시가 분당 주민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재정비 설명회에서 김기홍 분당 신도시 재정비 총괄 기획가(MP)는 엘리베이터를 교체해도 괜찮은지 묻는 시범단지 주민에게 "필요하다면 교체하라"며 "대신 불이익은 감수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아파트를 수선하면 주민 불편이 줄어들지 않느냐"며 "선도지구 선정에서는 그만큼 감점될 수밖에 없다. 시급하지 않다면 보수를 미루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아파트 고치면 선도지구 불이익…"무서워서 고치겠나"
국토부는 1기 신도시 총정비 대상 물량의 약 5~10% 수준에서 지자체 선도지구 규모와 개수를 정할 방침입니다. 물량이 적은 평촌·산본·중동은 1구역(약 4000가구), 물량이 많은 분당(약 9700가구)과 일산(약 6900가구)은 3~4구역 내외에서 선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선도지구는 용적률 혜택과 금융 지원 등을 받아 사업성을 높이고 2027년 착공해 2030년까지 재건축을 마치도록 한다는 것이 국토부의 구상입니다.


1기 신도시에서는 선도지구를 놓치면 재건축이 아주 어려워질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국토부가 이주 수요로 인한 전셋값 폭등을 우려해 순차적인 재정비 방침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선도지구가 재건축에 들어가면 다른 단지들은 다음 차례를 위해 기다려야 합니다. 자칫하면 선도지구가 재건축에 들어가고 10년이 지나도 순번을 기다리는 처지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공사비 상승으로 분담금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1기 신도시 주민들에겐 부담스러운 부분입니다. 10년 뒤 재건축 분담금이 어디까지 치솟을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빠르게 재건축을 마칠 수 있는 선도지구 경쟁에도 불이 붙었습니다. 선도지구 선정에 감점 요소가 된다면 보수를 미루는 것은 당연한 선택인 셈입니다.

다만 일선 MP들은 안전성 문제가 있다면 수선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범현 평촌 신도시 MP는 "선도지구 경쟁에서 우위에 설 가능성이 있다면 급하지 않은 수선은 미루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면서도 "뒷순위가 된다고 재건축을 못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안전성 문제가 있고 시급한 사안이라면 거주자를 위해 수선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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