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반갑다"…자신의 최후 예상한 바닷가재의 집게발 공격

입력 2024-05-09 18:51   수정 2024-05-10 01:59


아이고, 보는 내가 다 아프다. 손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다. 그만큼 개, 아니 강아지의 표정이 적나라하다. 고개를 한껏 젖힌 채 입을 있는 힘껏 벌리고 있다. 음성 지원이 될 정도다. 살짝 뭉개진 듯한 배경과 또 다른 주연인 바닷가재에 비하면 개가 좀 더 세부적으로 그려진 것 같아 효과가 극대화된다. 털의 결마저 그가 느끼는 고통에 따라 요동친다.

우연히 X(옛 트위터)에서 이 그림을 보았다. 처음에는 일종의 밈 또는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가 아닐까 의심했다. 화풍도 매체도 사실 그런 느낌은 아니지만 정황이 그렇게 보였다. 바닷가재가 개의 앞발을 물고 있는 그림 속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 일인지, 아니면 작가 상상력의 산물인지 확신이 잘 가지 않았다. 실존 작품인가 잠시 의심했다.

작가가 이미 고인인지라 물어볼 수는 없다. 작가는 영국 화가 윌리엄 스트럿(1825~1915)으로 이미 100년도 더 전에 세상을 떠났다. 영국인이지만 초기 식민지 시대 호주의 주요한 사건을 캔버스에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적 산불인 ‘1851년 2월 6일 검은 목요일’(1864)과 ‘빅토리아의 범법자들, 호주 1852’(1887) 등이 대표작이다.

그림으로 돌아와보자. 바닷가재에게 물려 있는 강아지가 안타까워 감정이 이입되려는 순간 제목을 알고 나면 피식, 실소가 삐져나온다. 그래서 제목이 뭐냐고? 바로 ‘환대(A Warm Response)’다. 사실은 강아지와 바닷가재가 악수라도 나누고 있는 상황인 걸까? ‘안녕하세요, 강아지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바닷가재입니다.’

하지만 스트럿의 대표 작품 가운데 ‘폿럭(Pot Luck)’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나면 이해가 좀 더 잘된다. ‘폿럭’은 원래 여러 사람이 십시일반으로 음식을 가져와 나눠 먹는 잔치를 뜻한다. 스트럿의 이 작품엔 개 네 마리가 인간이 버린 양동이의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개들에게 얼마나 흥겨운 잔치였을까? 아무래도 그가 영국식 블랙 유머를 즐겼던 것은 아닌가 추측하게 된다.

이게 다 그림 속 바닷가재가 실하게 잘 자라서 벌어진 비극이다. 바닷가재는 무더운 여름철까지 살이 꽉 찬다. 국내에는 캐나다산 바닷가재가 주로 들어오는데 살이 차오르는 5~6월에 금어기를 잠시 풀었다가 7월에 다시 어장 문을 닫는다. 바닷가재는 게처럼 수율, 즉 껍데기에서 발라낸 살의 비율이 20%로 엄청나게 낮다.

웬만큼 큰 놈이 아니면 바닷가재랍시고 먹다가 입맛만 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말이다. 실제로 마트에서 450g 수준의 바닷가재가 팔리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수율이 20%이니 살은 고작 90g 수준, 누구 코에도 가져다 붙이기 어려운 양이다. 그래서 바닷가재를 먹겠다고 결심했다면 이 그림에서처럼 강아지 발도 물어버릴 기개를 가질 만큼 큰 놈을 찾아야 한다. 1.8~2.7㎏짜리 ‘A급’을 권한다.

그림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강아지를 하필 백구로 고른 작가의 안목에도 감탄하게 된다. 공격하는 바닷가재의 검은색과 흑백 대비가 잘되다 보니 상황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림을 잘 보면 강아지와 바닷가재 옆에 있는 또 다른 바닷가재는 빨갛다. 이미 익어서 그렇다.

빨개서 이미 죽었음이 밝혀진 바닷가재 한 놈은 배를 까뒤집고 자빠져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살아 있는 검은 놈은 맹렬하게 강아지 앞발을 물고 있다. 곧 자신도 빨개질 운명을 알고 마지막으로 몸부림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강아지보다 몸집이 훨씬 크지만 최후를 예상한 바닷가재의 집게발 공격은 아주 거칠 수 있다. 따라서 바닷가재를 먹는다면 판매처에 아예 조리까지 부탁하는 편이 낫다. 집에서는 일이 번거로워질 수 있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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