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사기 90% 줄인 번개장터...“AI·빅데이터로 사기범 차단”

입력 2024-05-15 14:32   수정 2024-05-20 14:03



“중고거래 사기는 업체가 만들어 둔 시스템을 벗어나 거래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발생합니다. 그걸 최대한 예방하는 게 사기 방지의 핵심이죠.”

연종흠 번개장터 데이터랩장(40·사진)은 1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점점 진화하는 중고거래 사기 패턴에 대응하기 위해 인공지능(AI) 및 빅데이터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번개장터는 당근, 중고나라와 함께 국내 3대 중고거래 플랫폼이다. 현재 누적 가입자 수는 2200만명에 이른다. 지난해 거래액 2조5000억원, 거래건수 2000만건을 넘겼다.

최근 e커머스업계에서는 중고거래 사기 방지가 화두로 떠올랐다. 사기 피해 정보공유 웹사이트 더치트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거래 사기 피해 건수는 31만건, 피해 금액은 2600억원에 달했다. 개인 간 거래라는 특성 탓에 중고거래가 사기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번개장터도 한때 기승하는 중고거래 사기에 골머리를 앓았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직후 마스크·손소독제 품귀 현상이 나타나면서 관련된 사기 행각이 급증했다. 처음엔 담당 인력이 일일이 사기 징후 상품을 찾아내 삭제하는 등 조치로 대응했지만 곧 한계에 부딪혔다.


연 랩장은 “중고 거래가 단기간 폭증하면서 사기 패턴과 양도 크게 늘었다”며 “여기에 대응하려면 빅데이터와 머신러닝 등 기술을 이용해 축적된 데이터로 패턴을 탐지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기 거래 유형은 다양했지만 대부분을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시스템 바깥에서의 거래’를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번개장터 등 플랫폼은 에스크로(결제대금 예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구매자가 보낸 결제액을 안전 계좌에 보관하고 있다가 구매자가 물품을 받고 구매를 확정한 후 판매자에 정산하는 방식이다. 번개장터의 에스크로 서비스인 ‘번개페이’를 이용할 경우 사기 발생률은 1% 미만이다.

중고거래 사기범들은 이 같은 에스크로 결제를 우회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구매자에 접근한다. 채팅을 통해 구매자로부터 문의가 들어오면 “카카오톡이나 문자로 직접 얘기하자”고 한다. 이후 사기 계좌로 선 이체를 요구한 뒤 돈만 빼내고 물건을 보내지 않는 식이다.

연 랩장은 “이처럼 저희 채팅 서비스인 ‘번개톡’ 바깥에서 거래가 이뤄지면 추적 대응이 불가능해진다”며 “그래서 채팅 중 ‘카톡’ 등 특정 문구가 언급되면 자동 경고 알림을 보내 주의를 촉구하고, 사기 징후가 보다 명확해지면 즉시 차단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그러자 이번엔 이미지 파일에 카톡아이디 등을 넣어 전송하는 수법이 등장했다. 번개장터는 이미지 속 텍스트를 읽어내는 광학 문자 인식(OCR) 기술을 도입해 대응에 나섰다.


근본적으로 구매자들이 사기에 걸려드는 이유는 좋은 물건을 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 경우가 많다. 연 랩장은 “같은 물건을 시중 가격이나 최근 거래 시세 대비 터무니없이 낮게 올렸다면 사기 물품일 가능성이 높다”며 “그래서 구매자들이 시세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시세 정보를 모니터링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이밖에 판매자의 가입 시점과 판매물품 등재 시점과의 간격, 구매자들에 대한 판매자의 응대 등 여러 움직임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사기 패턴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연 랩장은 “판매자가 올린 상품 사진의 도용 여부 까지도 이미지 탐지 시스템을 통해서 검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거래해야 가장 안전하게 원하는 중고물품을 구입할 수 있을까. 연 랩장은 “저희가 ‘프로상점’으로 지정한 판매자로부터 ‘번개케어’로 구매하면 사기 위험 없이 안전한 거래가 가능하다”고 했다.

번개케어는 패션 등 중고 명품의 진품 여부를 번개장터의 전문 인력이 직접 검수한 뒤 보장하는 서비스다. 만약 나중에 ‘짝퉁’으로 밝혀지면 구매액의 최대 200%를 보상해준다. 번개장터에 따르면 사기방지 시스템과 번개케어가 정착한 지난해부터는 사기 거래 발생 건수가 전년 대비 90% 이상 줄었다.


연 랩장은 “중고거래는 일반적인 e커머스와 달리 구매·판매 거래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며 “굉장히 많은 데이터가 쌓이기 때문에 AI나 빅데이터 기술의 활용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고 했다.

연 랩장은 AI 분야에서 필수적인 자연어처리, 검색·추천 등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꼽힌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에서 학·석·박사학위를 받은 뒤 2018년 빅데이터 전문 스타트업인 부스트에서 연구소장을 지냈다. 2019년 번개장터가 부스트를 인수하면서 번개장터에 합류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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