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아슬아슬한 한국은행

입력 2024-05-16 18:09   수정 2024-05-17 00:11

그동안 한국은행 수장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박하지 않았다. 이창용 현 총재는 석학으로 평가받고 국내외 기관들을 오가며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이 총재가 소위 ‘한은사(寺)’로 불리는 보수적인 조직을 개혁하자 전문가들은 박수를 보냈다.

이런 평가가 최근 들어 조금 달라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국내 모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에는 90점을 줄 수 있었다면 최근엔 80점도 후한 느낌”이라고 평했다. 한은 직원들이 “총재가 공개 석상에서 불필요한 발언을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지난달 12일 통화정책방향회의가 끝난 직후 열린 이 총재의 기자회견. ‘물가상승률은 둔화하고 있지만 물가 자체는 여전히 높다’는 취지의 질문에 이 총재는 기후 변화로 인한 사과값 급등 등을 거론하며 “금리로 잡을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불필요한 발언으로 논란 야기
다음 발언이 문제였다. 과일값 안정을 위한 보조금 등을 길게 설명하면서 “불편한 진실인데, 농산물 등 물가 수준이 높은 것은 통화재정정책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같은 고민을 하면서 수천억원의 세금을 집행하는 정부 입장에선 무책임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말이다. 수혜자인 농민단체들은 즉각 “무책임과 무지의 소치”라며 반발했다.

총선을 앞둔 지난 3월엔 대통령 참모 출신인 한 국회의원 후보와의 비공개 면담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당시 후보는 SNS에 이 총재와 만난 사진을 올리면서 “(신도시 재건축의) 근본적인 해답은 바로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지난 1분기 국내총생산(GDP) ‘깜짝 성적표’는 중앙은행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이 총재는 이달 2일 간담회에서 “통화정책의 전제가 모두 바뀌었다. 기존 논의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1분기 경기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사실을 솔직히 전했지만, 시장은 “연내 금리 인하가 쉽지 않다는 인식을 내비쳤다”며 매파적으로 해석했다. 3주 전 “미국보다 (금리 인하를) 먼저 할 수도 있고, 나중에 할 수도 있다”고 한 이 총재의 발언과 대비됐다. 당시 발언은 통화 완화 기조로 받아들여지면서 환율시장을 흔들었다. 시장에선 “한은 총재가 한 달 사이 비둘기파와 매파를 오가고 있다”는 얘기가 돌아다녔다.
경기 예측·선제 대응에 집중해야
글로벌 금융시장과 실물 경제가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경제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일은 쉽지 않다. 거시 모델이 다루는 변수는 제한적이지만 전쟁, 질병, 이상기후 등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수시로 터져 나온다.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는 이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묵묵히 해나갈 때 생겨난다. 월가가 미국 중앙은행(Fed)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주요한 이유도 제롬 파월 Fed 의장의 판단과 대응이 현실 경제와 종종 달랐기 때문이다.

한때 ‘친절한 총재’로 명쾌한 메시지를 내던 이 총재도 어느 순간 “모호하게 말하는 게 중앙은행원이 배워야 하는 미덕”이라고 실토했다. 시장 전망이 냉탕과 온탕을 수시로 오가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절제와 겸손이 필요한 시기다. 친절한 은행원과 양치기 소년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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