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이후 국내 상장사에 대해 도입이 예정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를 두고 법적 근거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업의 공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면책 조치가 거론되는 가운데 이같은 조치를 위해선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해서다. 한국은 현재 ESG 공시 제정·시행에 대한 제도 근거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이날 정준혁 서울대 교수는 "ESG 공시를 시행하려면 제도화 기반이 필요하다"며 "공시 내용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려면 법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탄소배출량 등 ESG 공시에 들어가는 데이터 일부가 추산치가 될 전망인만큼 기업의 책임 면제가 필요한데, 제도적 바탕이 없는 채 면책을 거론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는 "일정 기간 동안 고의에 의한 부실 공시가 아니라면 공시 정보에 대해 면책해주는 조치가 당연히 필요한데, 거래소 규정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라며 "향후 지속가능성 공시와 관련해 분쟁이 발생했을시에도 법적 근거가 뚜렷하지 않으면 공시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적 정합성 측면에서도 관련법이 필요하다는 게 정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주요국 중 법정공시를 하지 않은 곳은 중국과 싱가포르 정도"라면서 "싱가포르도 거래소 규정으로 시작해 법 개정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이어 "한국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고, 외국인 투자자들도 중요한 만큼 국제적 정합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올 하반기 국민연금과 기업과의 대화 주제 중 하나가 기후변화 관련 위험관리인데, 현재로선 관련 정보가 부족한 편"이라며 "의무공시 시점을 미루기보다는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되 관련 제재를 유예하는 방식으로 기업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후 이외 분야 정보에 대해선 차차 논의하자는 의견도 줄을 이었다. 정준혁 서울대 교수는 "기후변화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주요 이슈라는 의견 일치가 있는 반면, 출산율과 미세먼지 등 외국에선 관심이 덜하지만 국내에서 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속가능성 관련 현안도 있다"며 "이같은 사안 등에 대해선 추가적으로 논의해 (우선순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윤철민 대한상공회의소 실장은 "일단 기후공시 정착 이후에 기후공시 이외 사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 좋을 것으로 본다"며 "현재 기업들은 도입이 예정된 기후 공시를 두고도 준비해야할 것이 정말 많은 상황"이라고 했다. 정상호 한국거래소 상무는 "기후관련이 아닌 주요 주제나 공시지표와 관련해선 사회적 합의를 충분히 형성한 뒤에 의무공시로 전환하는 여부에 대해서 검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정상호 한국거래소 상무는 "밸류업 가이던스에 따른 정보 공개와 지속가능성 정보공시 간의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최근 밸류업 세미나에서도 제시됐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거래소가 연구를 해보겠다"고 했다. 그는 "지배구조보고서나 ESG 공시가 결국에는 밸류업 공시로 통합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권미엽 삼일회계법인 파트너는 "기업들이 체계적으로 ESG 공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공시 의무화 시점을 미리 알려주고 의무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ESG 공시는 기업의 사업·재무상 중요한 것만 공시를 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만큼 유예 기간을 전제로 한 의무공시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김동수 김앤장 ESG연구소장은 "글로벌 동향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2029년엔 국내 기업들에도 ESG 공시가 적용될 것"이라며 "기업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의무공시보다는 선택공시 방식을 택해 기업들의 부담을 단기적으로 경감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기업의 법적 책임을 유예해줄 수 있는 법률상 제도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