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 회복세…스타트업 '몸값'은 하락

입력 2024-05-27 16:01   수정 2024-05-27 16:07


국내 벤처 투자가 회복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영국 등 해외 선진국보다 스타트업 투자액 증가 폭이 컸다. 하지만 최근 ‘투자 혹한기’ 여파로 투자받은 일부 스타트업은 기업 가치가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경제부총리 주재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1분기 국내 벤처투자와 펀드 결성 동향과 벤처투자 현황 진단 및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1분기 벤처투자액은 1조9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6% 늘었다. 벤처펀드 결성액은 2조4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42% 증가했다.

중기부는 해외 주요 벤처 투자 선진국과 비교하면 국내 스타트업 투자 회복세가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달러 환산 기준으로 올해 1분기 국내 벤처투자액은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20년 1분기보다 15% 늘었다. 반면 미국은 같은 기간 10% 줄었다. 영국도 8% 감소했다.

분야별로 보면 우주항공, 인공지능(AI), 로봇 등 딥테크(선도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급증했다. 정부가 정한 딥테크 10대 분야의 스타트업 투자 비중은 지난해 말 31%에서 올해 1분기 40%로 높아졌다. 해당 분야에서 1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 사례도 늘었다. AI 분야에서는 AI 반도체 설계 업체 리벨리온과 생성형 AI 개발사 업스테이지 등이 올 1분기에 1000억원 이상 투자를 유치했다. 로봇 분야에서는 한국인이 미국에서 창업한 기업인 베어로보틱스가 800억원을 투자받았다.

하지만 올해 2년 연속 벤처 투자를 받는 데 성공한 스타트업 중 5곳 중 1곳은 ‘몸값’을 깎아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벤처 겨울’ 여파로 스타트업의 평균 기업가치가 대폭 하향 조정된 영향이다. 하반기에도 스타트업의 기업가치 조정 양상은 계속될 것이란 게 업계 관측이다.

중기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에 전년 대비 기업가치가 줄어든 피투자기업의 비중은 20.7%였다. 올해 1분기에 투자받은 기업 중 전년에 투자받을 때 매겨졌던 기업 가치보다 회사 가격이 내려간 회사의 비중이다. 중기부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5년 이후 10년 내 최고 수치다.

투자 호황기로 불렸던 2021년엔 전년보다 기업 가치를 깎아 투자받은 스타트업 비중이 6.6%에 불과했다. 투자 혹한기가 시작된 2022년엔 이 비율이 12.3%로 올랐고, 작년엔 15.7%로 상승했다. 올해 1분기에는 20.7%까지 뛰었다. 이전 최고치는 2015년(18.8%)이었다. 2년 연속 투자받은 스타트업 중 기업가치를 깎아가면서 투자를 유치한 비중이 3년 만에 3배 넘게 늘어난 셈이다. 해당 스타트업 중 상당수는 전년에 투자를 받았지만 현금이 소진돼 곧바로 추가 투자를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 가치를 깎아서 추가 투자를 받는 데 성공한 스타트업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2020~2021년 대비 밸류에이션을 대폭 낮춰 창업자 입장에서는 ‘헐값’에 투자를 받으려고 해도 투자 유치 자체가 잘 안되는 회사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일각에선 수년 전 유동성이 많았던 시기 치솟았던 스타트업의 몸값 거품이 서서히 빠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한 VC 업계 관계자는 “일부 스타트업이 몇 년 전에 비해 많이 싸졌지만, 더 가격이 내려갈 여지가 있다고 본다”며 “어찌 보면 정상화 과정”이라고 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작년보다 좋은 투자 기회가 많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기업 가치 조정 과정에서 투자사와 피투자사 간 줄다리기도 벌어지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아직도 투자사가 보는 기업 가치와 피투자사가 생각하는 기업 가치 간 차이가 완벽하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중기부는 벤처 투자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다양한 투자 주체별 현황을 일정 주기(월∼반기)마다 공개하고 벤처펀드 운용 수익률 등도 전수 조사해 분석할 예정이다. 비수도권 전용 펀드를 2026년까지 누적 1조원 규모로 조성한다. 전국 6개 광역권별로 해당 지역 스타트업 투자설명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오영주 중기부 장관은 “시장 상황을 살피면서 시의적절한 정책 수단으로 우리 경제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업계와 긴밀히 소통해 벤처투자 활성화 종합대책도 차질 없이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주완/고은이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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