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칠순을 맞은 집안 어른이 조카들을 모아놓고 몇 가지 당부를 했다. 첫째 노후 준비를 위해 월소득의 일정 부분을 적립식으로 주식에 투자할 것, 둘째 한국 시장이 아닌 미국 시장에서 할 것.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한국 증시는 국민의 자산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기 투자자가 빠져나간 주식 시장은 투기판으로 전락했다. 높은 자본 비용에 기업들은 혁신을 위한 투자도 하기 어렵다. 저성장과 노후 빈곤의 악순환이 불 보듯 뻔하다.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일만큼이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절실한 이유다.우리 기업인들이 유독 탐욕적이어서가 아니다. 비정상적인 세제와 규제 아래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해온 결과다. 한국의 대주주들은 주가가 오르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속·증여세를 각오해야 한다. 배당이라도 하려면 배당 수익의 50% 가까운 돈이 세금으로 나간다. 열심히 주가를 높이고 주주환원을 할 유인이 없다. 대주주와 소수주주 간 이해관계 불일치를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다. 재벌에 비판적인 행동주의 진영마저 상속세 완화와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밸류업 정책의 핵심으로 꼽는 이유다.
쪼개기 상장 같은 결정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법이 ‘이사회의 주주에 대한 책임’을 명시하는 상법 개정안이다. 논란이 많지만 결국 기업인에 대한 견제를 한국에만 있는 기이한 규제와 검찰 수사가 아니라 시장이 하도록 하자는 게 본질이다. 제도만 뒷받침된다면 기업들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대신 ‘경영 판단의 원칙’을 도입하고 동일인 규제, 사익편취 규제 같은 갈라파고스 규제는 모조리 없애야 한다.
답은 나와 있지만 풀기 어려운 문제다. 국회가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내는 수밖에 없다. 22대 국회에 ‘기업 밸류업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는 이유다. 상속세 완화부터 상법 개정까지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패키지로 처리해야 한다. 정치적인 고려 없이 ‘이해관계 일치를 통한 투자자의 예측 가능성 제고’만 제1 원칙으로 삼으면 된다. 특위가 어렵다면 적어도 초당적 연구모임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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