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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시대, 거버넌스를 주목하는 이유는

입력 2024-06-05 06:00   수정 2025-07-04 13:02

[한경ESG] 커버 스토리 - 밸류업 시대, 차세대 거버넌스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지배구조 개혁이 중요하게 거론된다. 금융위원회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원인으로 지배구조를 지목했다. 전문가들은 지배주주·일반주주 간 힘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기업 이사회가 지속가능성 사안을 다뤄야 진정한 의미의 기업가치 제고가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5월 2일 발표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밸류업 프로그램)도 이러한 맥락에서 마련됐다. 기업이 스스로 기업가치 제고와 관련한 계획을 수립해 공시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시장 평가, 자본효율성, 주주환원 정책 등을 주요 공시 지표로 제시한다. 지배구조와 관련해서는 일반주주 권익 제고, 이사회 책임성, 감사 독립성 등 한국거래소의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가이드라인이 제시하는 항목을 참고해 지표를 자율적으로 선정하도록 했다.

이에 첫 밸류업을 공시한 키움증권은 ROE 15%, 주주환원율 30%, PBR 1배를 달성 목표로 제시하며 업계 최고 자본효율성 기반으로 주주를 중시하는 경영을 펼치겠다고 공언했다. 밸류업 공시를 통해 성장성에 대한 우려 불식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다만 지배구조와 관련한 내용이 부족해 아쉬움을 남긴다.

지배구조 취약점 관리해야

전문가들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기업이 한국 특유의 취약점으로 분류되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힘의 불균형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관련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지배주주가 사적이익을 추구할 유인이 큰 상황에서는 주주환원에 나설 이유도, 생산성 제고와 혁신의 노력을 기울일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준혁 서울대 교수는 “대부분의 한국 기업이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기업 밸류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경우 주식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드물고, 상속세 부담이 증가할 수 있으며, 적대적 인수합병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지배주주가 주가를 부양할 유인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지배구조 평가에 “집중투표제, 분리선출 감사위원 수처럼 지배주주 외 주주가 이사 등을 선임해 지배주주의 대리인 문제를 통제할 수 있는 사항”을 포함할 것을 권고했다. 지배주주의 존재 자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지만, 지배주주에 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일반주주의 권한을 강화해야 진정한 의미의 지배구조 개혁을 이룰 수 있으며, 기업가치 제고도 가능하다”고 봤다. 그는 “총수·경영자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일반주주가 이를 거부할 수 있고, 기업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권한을 줘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건설적 대화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좋은 기업 거버넌스가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고, 생산성 제고와 혁신을 이끌어낸다. 경영자가 이해관계자와 함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할 수 있도록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세대 거버넌스는 무엇일까

기업 이사회가 생산성 제고와 혁신을 위해 기후와 인적자본 등 지속가능성 사안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 밸류업 논의를 촉발한 일본도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지속가능성 사안에 대한 경영 전략화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기업과 투자자의 대화를 밸류업의 핵심으로 내세운 바 있다.

이러한 개념은 OECD가 G20과 함께 지난해 9월에 개정한 ‘기업 거버넌스 원칙’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세계 자본시장과 관계 법규 등의 변화를 반영해 8년 만에 개정된 원칙은 ?기업의 자본시장 접근성을 개선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틀을 제시하며 ?기업의 지속가능성 및 회복력을 지원한다는 3가지 목표를 담고 있다.

개정 원칙은 첫 번째 목표인 기업의 자본시장에 대한 접근성 향상과 함께 세 번째 목표인 기업의 지속가능성 회복도 중요하게 다룬다. 이와 관련해 마티아스 코르만 OECD 사무총장은 “(개정이) 환경 및 사회적 위험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모든 OECD 및 G20 회원국의 강한 열망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기업 거버넌스의 역할을 환경 및 사회적 위험관리로 확장한 셈이다.

이 원칙은 정부, 준정부 기구, 자율 규제 기구가 각국의 기업 거버넌스 체계를 평가하고 관련 법제와 자율 규제 개선에 참고하는 지침서로 활용되고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금융안정위원회는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 확보를 위해 이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ESG기준원도 해당 원칙을 준용해 지배구조 모범 규준을 만든다.

ESG 경영도 이러한 현대적 지배구조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지배구조를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 및 기회를 모니터링, 관리·감독하기 위한 기업의 관리 방식 전반으로 해석한다.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전통적 지배구조에 한정된 개념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아 이를 지배구조와 구별할 수 있도록 ‘거버넌스’라고 번역했다.

현대적 거버넌스 토대로 한 리더십 요구

투자자들은 기업의 지배구조(control structure)뿐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다루는 현대적 거버넌스(governance)에 주목한다. 비즈니스의 친환경성, 기후 리스크 관리 여부, 보상 체계와 지속가능성의 연계 등을 살펴본다. 이사회가 실제로 지속가능성 사안을 검토하고 의결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거버넌스 개혁이 불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OECD는 기후변화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 현대적 거버넌스를 토대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 기업의 자본시장 접근성을 개선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틀을 제공하며,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기업의 실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앨릭스 에드먼스 런던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최근 자본시장연구원과의 인터뷰에서 “ESG를 틈새 주제로 보지 말고, 장기적 재무 가치를 창출하는 중요한 요소로 봐야 한다”며 “기업이 이해관계자에게 투자하는 것은 주주 가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파이를 키우므로 주주와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거래소는 5월 31일 기업 밸류업을 위한 코스피 대형 상장기업 간담회를 개최하고 “기업가치 제고 계획은 기업경영의 큰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고 시장참여자들과 소통 창구가 되어야 하는 만큼 ‘빠른 공시’ 등 속도에 집중하기보다는 진정성 있는 고민과 검토를 거쳐 ‘의미 있는 공시’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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